☞인성교육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자

심산멘토 2015. 11. 14. 16:36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자      경암

 

 

 

사람이 살아가는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위엄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운명을 연구하는 역학자 대부분은 재물과 관운이 좋은 사람을 좋은 사주라고 한다. 인생살이가 편하고, 많이 갖고, 명예가 높으면, 좋은 사주팔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최초 어느 우매한 운명가에 의해 만들어져 확산되고 모든 이들에게 각인되었다. 이것은 서구의 정신문화와 물질문명의 유입으로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해져 더 심각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운명은 이러하다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생명의 기운인 공간적 개념의 명(命)과 살면서 실시간 다가오는 시간적 운을 어떻게 선택하고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운(運)의 합이라 할수있으니 지식을 쌓고 지혜를 갖는것은 당연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이 가지고 태어나는 기운이 있다. 즉 흔히들 삼신할머니 혹은 신이 주셨다고 하는 기운이다. 이 기운은 사주팔자 즉 생년월일시에 따라서 다르다. 이 생년월일시에 따라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기운은 다르다. 하지만 이 기운으로 평생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살면서 사주체에게 주어지는 기운 즉 운수(運數)가 이에 보태지는 것이다. 명을 신이 주어서 거스룰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운수는 본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운에 따라서 달라지는 운이 만나는 것이다. 이 명과 운수가 합해져서 사람의 운명이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운과 명이 제때에 시기적절하게 만난다면 그에게 행운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운이 닥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날 며칠에 교통사고가 생길 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자. 하지만 그날에 그 사람은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이 사람의 명대로 본다면 사고가 생겨야 하지만 이날 사고가 후천적으로 시간에 따라서 달라지는 운에 의해서 이 사람은 목숨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정해진 명일지라도 시간적 흐름에 따라, 또한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운을 변화시켜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 운명은 이렇게 정해져 있다고 해서 운을 개척할 생각도 하지 않고, 의지력을 잃어버린다면 정해진 명에 의해 그는 운명을 사는 것이다.


나의 인생 전반에 걸친 운세를 알고자 한다면 당신의 사주를 풀어보면 될 것이다.


사업운, 재물운, 건강운 등 사주속에 당신의 인생 전반에 대한 운세풀이가 담겨 있다. 이러한 각 사람의 운의 흐름을 통해 당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당신의 운세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주를 통해 자신의 앞길을 미리 점쳐보는 것은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주의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을 조금이나마 좋은 쪽으로 이끌고자 함에 있다.

사주가 100%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가지 학문과 기법을 통해 전해내려 온 여러자료들을 통해 연구와 연구를 거듭했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는 학문 또한 역학이 아닌가 하는데 이처럼 사주속에 당신의 인생모습이 정확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루어진 이러한 학문의 연구속에서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가지고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믿기 어렵다고도 볼 수 없다.

 

명리학 운명론은 상당히 정확하다.

인간을 소우주라고도 한다. 이 말은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며 운에 있어서 주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함을 인지하는 것이 우선이며 무지한 자는 운을 알지 못하며, 현명한 자는 운을 알며, 뛰어난 자는 운과 이치를 알며, 지극히 높은 자는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이 운을 만들어간다.

 

자연에 역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르게 이해해야 함이 우선이다. 대우주 기운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인지해야 한다.

 

운을 아는 자는 비오는 날 우산을 팔고, 맑은 날 짚신을 판다. 뛰어난 자는 비오는 날 짚신을 팔고, 맑은 날 우산을 팔며, 우산을 팔 때 맑아지거나, 짚신을 팔 때 비가와도 동요됨이 없다. 지극히 높은 자는 그것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치를 모르는 자는 인간의 인생이 항상 맑기만을 바라며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사주팔자를 해석하는 이들의 핵심은 운 좋을 때 가지게 되며, 운이 나쁠 때 잃게 된다는 것인데 대개 항상 가지려 모두가 애를 쓴다.

자신의 명을 안다면 이를 통해 운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본 인의 명은 자신의 생년월일시 즉 사주팔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들과 사고 등을 알 수 있고, 또한 당신의 행운과 불운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명을 알게 되면 이를 통해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를 막는 것은 운에 해당하는 것이다. 비록 사고를 당할 운명이었지만 이런 명을 알고 이에 대비하였기에 화를 면할 수 있는 운수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을 아낄 수 있는 사람은 화를 면할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의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운명은 꼭 정해져 있는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명을 통해서 운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면 행운도 누릴 수 없고, 불행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재물운을 타고난 사주라는 것도 역시 기운의 흐름을 탄다. 재물운이 불리한 때에 재물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더 크게 망한다. 베풀고 적선하고 공덕을 쌓아야한다,

 

 베풀라 할 때 가지고져 한다면 탈이 나게 되어 있다. 베풀지 않으면 재물을 크게 잃거나 또 다른 소중한 무엇을 잃거나 건강을 잃거나 몸을 다치게 된다. 재물을 잃는 것 역시 크게 보면 베푸는 것이다.

 

재물을 챙기는 것에 집중하는 자라해도 재물을 거둬들일 때 거둬들이며, 베풀어야 할 땐 베풀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자연의 섭리는 알아둬야 하지 않겠는가. 재물운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남의 것을 잘 뺏으며 베푸는데 인색하다는 사람이다.

 

재물운이 좋다고 하는 관상역시 남의 것을 잘 뺏고 뺏은 것을 잘 가둬두는 형상인데, 원숭이가 남의 입속에 있는 먹이까지 뺏어 자신의 입에 채워 볼이 불룩하게 된 형상을 두고 재물복이 좋다는 귀한 관상이라 하고 있다.

얼굴의 코는 세상의 중심이며 자신이라 한다. 콧방울이 발달하고 크면 자신이 중심을 형성하기에 유리하며 자신을 채우는 데에 욕심이 많은 자이다. 이러한 형상을 재물복이 좋은 귀한 상이라 하고들 있다.

 

양볼이 사탕 집어넣은 듯 불룩하며 그것이 축 늘어진상, 재물복이 좋다는 코뭉뚝이상, 이런상들은 사실 알고보면 상대를 해치는 상이 많다. 자존심 승부에서도 내가 이길 때가 있고, 상대에게 양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대개는 항상 이기려고만 한다. 내가 양보를 해야 함에도 이기고자한다면 더 크게 당하게 되는것이다.

넉넉한 자들이 재물운이 좋지 않다고 하는 때에는 여러 사람들에게 베풀라는 자연의 이치임에도 재물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다. 재물운이 좋다고 할 때 많은 욕심을 내고, 그렇지 못할 때도 역시 욕심을 부리거나 그것을 지키려고 애쓴다.

 

덕(德)이라고 하면 받는 것이라고들 한다.

인덕이 있다. 인덕이 없다. 부모덕이 있다. 부모덕이 없다. 고하는데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지 못한 어떤 이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모두가 잘못 알고 사용하고 있다. 덕 을 쌓는다. 덕을 베푼다. 와 같이 덕이라는 것은 실천을 강조한다.

 

덕이라는 것에는 베풂으로써 그 자체가 고귀한 인격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된다. 꼭 물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덕을 갖춘 이는 줘서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베푸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덕을 갖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어찌 받는 것을 덕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목적은 자신의 수준을 높여 지극히 높은 존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숙제를 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어찌 재물이 많은 사주를 좋은 사주라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재물과 거리가 먼 사주가 마음 닦고 명성을 높일 수 있는 사주이다. 고로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목적에 더 부합하는 귀한 사주이다.

 

많이 가진 자들일수록 욕심이 많고 그것에 대한 집착은 또 다른 집착을 불러 결국 자신의 영혼은 피폐해지게 된다. 집착은 미천한 인간들, 저급한 영혼들이 가지는 필수 요건이다.

 

그러하니 어찌 물질을 많이 가진 자를 부러워하랴. 미천한 자는 물질에 집착을 가지며, 인간에 집착을 가지며, 편안함에 집착을 가지며, 배부른 것에 집착을 가지며, 누구로부터 인정받거나 평가받는 것에 집착을 가지며, 자신의 목숨에 집착을 가진다.


연예인들의 자살

 

이들은 자신의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린 것인가. 그것이 아니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미처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이가 자신을 욕한다고 해서,어렵다해서, 소중한 자신을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은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것과 함께 누구에게 평가받고자 하는 것의 집착이다. 타인에게 평가받고자 함이 없어야 하며, 특히 마음 닦는 이들은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그런 운이 와서 자신이 그렇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지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때, 자신이 수준을 높여 깨우친 자라면 그러한 운에 절대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살한 자들은 영혼도 고통이 지속되며 어둠속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적으로 미숙한 자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데, 영혼도 잘 모르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도 잘 알지 못하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우치지 못한 이들이다.


스스로 의문을 가지며 찾다보면 소중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는 법인데 왜 이러한 것엔 정성을 그리 쏟지 않는 것일까. 안타깝고 한심하다. 연예인들은 남에게 인정받고자하는 마음이 크다. 그것이 '인기(人氣)'라 하는 것이며, 그들은 인기를 받는 데에 목말라 하고 있다. 또 그들의 행위는 놀이이다.

 

그래서 그들의 주변에는 저급한 혼령들이 바글바글대는 것이며 귀신목격담도 끊이질 않는다. 연예인들 또한 영적으로 수준이 낮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장래희망 1위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사주라는 것은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말한다. 즉 천간 지지로 풀이하여 여덟글자를 놓고 그 사람이 태어난 일주가 나머지 오행과 어떠한 영향을 받아 흘러가는 지를 보고 풀이하여 주는 것이다.

 

사주를 풀이할 때에는 운명의 큰 틀을 믿는다는 전제하에 풀이가 시작된다. 자신이 태어난 생년월일에서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볼 때에 그러한 것들을 변화시키는 변환점을 찾고자 사주를 풀이하게 되는 것이며 자신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나 몸가짐등을 판단하고자 풀이하여 보는 것이 바로 사주풀이이다.

이 사주를 풀이하여 보고 자신이 현재 노력하여서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 지를 알게 된다. 정히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상태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변화시킬수 있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고 노력하는 것이며 나쁜 것을 피해갈 수 있는 액운 즉 피해갈 방법이나 변화시킬 방도가 있다면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사주를 풀이하여 보는 것이다.

 

 

 

좋은 사주, 나쁜 사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 어떠한 것을 하기에 유리한 사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며 최종적으론 그 틀조차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역학자들은 강한 사주, 약한 사주라는 것의 해석도 멋대로 하고 있다. 그것은 그 운명가 자신의 깨우침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주팔자에서 내가 생 받음이 지배적이면 강한 사주라 하여 긍정적으로 보고, 극 받음이 지배적이면 약한 사주라 하여 부정적으로 본다. 그것은 강약의 구분이 아니라 생극의 구분이다. 생극의 구분을 좋고 나쁜 강약의 구분으로 잘못 이해, 해석하고 있다.

생극이 균형을 이루는 중화된 사주를 좋은 사주라 보고 편안한 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라 중화됨에 가까울수록 모험적이지 못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성향의 인물이다.

 

강한 사주를 가진 자를 강한 자라 하며, 약한 사주를 가진 자를 약한 자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둘은 아주 흡사한 성향을 보인다. 둘 다 모험적이며 도전적이다. 정작 강한 것은 재물을 불리기에 불리한 약한 사주라고 하는 사주이다.

 

이 역시 수준 낮고 물질주의에 물든 어떤 운명가의 제 멋대로 해석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강한 사주라는 것이 재물을 거둬들이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준은 오직 재물이다. 그것을 모두들 답습하고만 있다.

자신의 사주에 대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누구나 그에 맞게 유리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려면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인간은 누구든 불리한 여건이라 하지만 그것은 불리했다고만 할 수 없다. 자신을 성숙시키기에 좋은 환경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수양하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자신의 수양 이상으로 그 어려움이 컸거나, 그것을 이겨낼 만큼의 그릇을 갖추지 못해서 화를 만든 것이다. 범죄자가 되느냐, 수준 높은 인간이 되느냐의 열쇠는 자신이 가지고 있다. 부족함에서 자신의 사고가 깊어지고 수준이 높아지며 그릇이 커진다.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어렵다고 하는 환경이 닥칠 때 비이성적인 심리와 행동을 보이거나 남을 해치거나 자멸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을 알고 마음 닦는 이들에겐 운이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운명가들이 불리하다고 하는 운이든 유리하다고 하는 운이든 그것에 구속받지 않으니 아무 상관이 없다. 항 상 자신이 스스로 어려움과 부족함을 만들며, 남들이 어렵고 부족하다고 하는 그러한 때 역시 수양의 깊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이들이 보기엔 평생 부족한 것으로 보겠지만, 실제 그것은 평생 꽉 채워진 것이며 자연에 잘 순응하는 것이며 조화로운 것이다.그 수준이 지극히 높아지면 자연에 영향을 받는 존재에서 자연과 주고받는 존재가 된다.



사주팔자 명리학 외에 성명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상생을 찾아서 억지로 끼워 맞추는 작업이다. 좋은 이름이 좋은 이름이 아니고, 나쁜 이름이 나쁜 이름이 아니다. 역학자들, 성명학자들이 깨우치지 못한다면 그 기준은 바뀌지 않을 듯 싶다.

 

관상학도 마찬가지이다. 대개 수준 낮은 역학자들이 관상을 보고 있으니 어찌 제대로 볼 수 있으랴. 관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눈이라 한다. 눈은 마음이 드러나는 곳이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인지해야 하고,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관상법이 최고의 관상법이다. 사물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볼 수 있는 심안이 바로 이것이며, 스스로의 수양으로 깨우치지 않고선 가질 수 없다.

 

탐욕에 꽉 찬 재물복 좋다는 관상을 좋은 관상이라고들 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다하지 않겠는가. 역학자든 관상가든 성명학자든 남을 보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깨우쳐야 한다.

운이 좋다고 하는 것 나쁘다고 하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며, 좋은 사주라 하는 것 나쁜 사주라고 하는 것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쁨의 구분으로 봐서는 안되며 다른 무엇을 하기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며, 마음을 닦는 자들, 수양하는 자들, 종교인들은 특히 그것에 집착하는 무지함은 없어야 한다.

 

진정 수준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기도하는 데에도 물질적 안정, 자신의 편안함을 갈구하지 말아야 한다.이러함을 바라는 자는 스스로 "나는 수준 낮은 미천한 존재로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운명가들은 단순지식에 가로막혀 수준 높은 존재로 발전하기 어렵다. 사주를 보는 것이 무슨 자연법이나 자연의 이치를 깨우친 마냥 생각하고들 있다.

 

무속인들이 처음내린 신을 가짐으로서 혼통[아기신,조상신 등]에 구속되어 발전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론 지식이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일 수 있음에 의구심을 가져야 하며, 수시로 자신의 지식과 믿음을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큰것을 깨우치는 데에 잠시 거쳐 가는 과정으로 삼는 경우는 나쁘지 않겠으나 이러한 자는 매우 드물다. 그것에 대한 자신의 믿음에 점점 구속되기 때문이다. 넉넉한 살림을 동경하는 자에게 깨우침은 오지 않으며 수준 높은 영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수준이 높고 닦인 조상은 후손이 부자 되는 것을 반기지 않고 도움이 없으며, 고귀한 인간은 부자됨을 스스로 멀리한다.

 

재물을 탐하는 사주, 재물복이 있는 사주를 부러워 말라. 미천한 자들이 수준 낮은 자신의 안목에 의해 '부족하다' '좋지 않다' 라고 평하는 사주가 더 가치 있는 사주임을 인지할 수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관상학, 성명학 모두 마찬가지. 그러하니 어찌 세상이 불공평하다 하겠는가.

사주의 운을 활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지혜롭다 할 수 있다. 그것보다 더 지혜로운 것은 사주가 어떻든 운이 어떻든 진리를 깨우치려 노력하는 수양의 자세이며 자신을 지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고귀한 존재가 되고 싶다면 사주, 운 등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 어떠하든 모든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자연의 이치를 알고 진리를 깨우쳐 가며 자신의 수준을 높임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불리함을 만들어 갈 줄도 알아야 한다.

성철 스님에게 대기업 회장 등의 돈 많고 유명하다고 하는 인물들이 많이 찾아왔다. 시주도 많이 했겠지 않겠는가. 그렇다 고 성철 스님이 넉넉하고 편안함을 찾았는가. 이미 그는 그 이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에 안주했다면 수준 높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

 

찾아오는 이들은 돈으로 마음을 사려했으나 성철 스님은 차가웠다. 어린아이를 제외하고 3천배를 하지 않고선 그를 만날 수조차 없었다. 돈으로 신의 마음까지 살 수 있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을 당장 갖다 버려라. 돈을 주면 신이 잘 봐주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신이 아니다.

 

 

 

인간이 한 말을 신이 한 말이라 감히 신을 더럽히지 마라.

신앞에 자신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러한 자들이 어찌 마음 닦는다 할 수 있으랴. 어찌 남을 교화시킬 수 있으랴. 종교 안에 있다하여 깨우친 것이더냐. 종교 안에 있는 것만으로 수준이 높아진다더냐.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이러함은 수양하는 자들,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깨우쳐 살아가야 한다.

사주팔자 명리학, 관상학, 성명학이 어떠한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감이 오는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미천한 자들이 어설픈 기준으로 사주와 운명에 대해 논하는 것을 그대로 다 믿지 말아야 하고, 그것에 얽매여 자신을 잃는 무지함은 더욱 없어야 한다. 이러해도 좋고 저러해도 좋은 법이다.

 

욕심이 많을수록 불만이 많아지며 그것에 집착하게 되어 자신을 볼 수 없게 되고 깨우치기도 어려우며 수준 높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재물욕이 가장 크나 그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넓게 보면 식욕, 수면욕, 성욕, 소유욕, 명예욕, 권력욕, 승부욕 등 모두가 포함된다.

 

 

 

어떤 이는 부모의 무책임함을 원망하는데, 물질문명에 찌든 시각으로 이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 소중한 생명으로 태어난 이유가 다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재물과 편안함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부족하다 할 때 자신의 욕심이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주만물 중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흘러가는 운, 세월이라는 것도 어느 한때 가치가 없는 것이 없다. 감히 어떤 이가 우주와 우주의 운의 흐름에 가치가 있고 없음을 논할 수 있으랴. 인간을 '소우주'라 하여 우주의 축소판이라 하지 않았던가.

 

모두 소중한 흐름이다. 우주든 나 자신이든, 우주 전체의 운의 흐름이든 나 자신의 운의 흐름이든 그 모두가 가치 있는 것이며, 그것은 좋고 나쁨으로 구분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평생 부족함과 힘겨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깨달으면 운의 영향이 어떠하든 자신은 흔들림이 없고 노력하여 비로소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아무나 알 수 없는 인생의 숙제를 풀었다면 실천하는 것만 남았다.

부족하다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 모자란다고 따돌림 당하는 이들, 어리석다고 무시당하는 이들일수록 수준 높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면 놀라겠는가? 세상은 불공평하지 않으며 찾고자 노력하는 이는 진정 귀중한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