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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삼국지(三國志)

심산멘토 2015. 9. 23. 10:01

                         삼국지

 

 

 

『삼국지』의 역사는 텍스트의 진화사   유중하(연세대 중어중문과 교수)

『삼국지』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정작 원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다. '통속'이란 요즘으로 치자면 선비나 귀족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 대중들이 즐기는 대중적인 장르에 속한다는 뜻이며, '연의'란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있게 풀어 설명한다"는 뜻으로, 그런 내용이 담긴 책이나 창극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통속연의'라는 네 글자를 뺀 『삼국지』는 진수(陳壽)1)가 남긴, 위서(魏書) 30권, 촉서(蜀書) 15권, 오서(吳書) 20권을 합하여 모두 65권으로 이루어진 역사책이다. 진수는 진(晋)나라 사람이고, 진나라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로부터 국권을 선양(禪讓)받은 나라였기 때문에 조조를 정통으로 하여 역사를 기술했다. 그럼에도 조조(曹操), 손권(孫權), 유비(劉備)에 대한 인물 평가는 공정을 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조는 "비범하고도 초인적이며 걸출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으며, 유비에 대해서는 "한 고조의 풍도가 있고, 영웅의 그릇"을 구비한 인물, 손권은 "구천의 기이함과 영웅의 걸출함"을 갖추고 있다고 적고 있다. 한(漢) 고조(高祖)란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을 가리키며, 구천(勾踐)은 장작을 베고 자면서 쓸개를 핥으며 오나라 임금 부차에게 원수를 갚았던 월나라의 임금이다. 유비와 손권 두 인물의 캐릭터에는 원조가 있는 셈이다.

그 뒤 남북조 시대에 이르면서 배송지(裵松之)2)가 역사책 『삼국지』에 주석을 붙이는 과정에서 민간에 떠돌던 야사(野史)나 잡전(雜傳)을 끌어다가 『삼국지』의 여러 항목들을 윤색하면서 『삼국지』는 풍부해지기 시작한다. 역사책에 백성들의 입담이 가미되는 것이다. 이런 백성들의 입담이 본격적으로 가미되는 것이 바로 송(宋)나라에 이르면서이다. 중국 문학에서 명문장으로 이름을 손꼽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의 『지림(志林)』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이놈들이 귀찮게 굴어 돈을 몇 푼 주어 내쫓으면 놈들은 그 돈으로 이야기꾼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으로 몰려간다. 유현덕이 패하면 얼굴을 찡그리거나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도 조조가 패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표정이 되어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노래를 신이 나서 따라 부른다.

 

그 당시부터 이미 유비를 편들고 조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풍조가 도시의 골목 동네 아이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리는 증빙이 된다. 더욱이 흥미로운 것은 송나라에는 전문적인 이야기꾼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소동파가 고을 원님으로 있던 항주(杭州)는 당시 인구 100만을 넘는 거대도시였고, 저잣거리 한쪽 구석에는 장사치들이나 인근에 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삼국지』의 명장면을 그린 그림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문적인 이야기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가리킨다. 이야기꾼들이 펼쳐놓고 입에 침을 튀겨가며 들려주던 것이 『화본(話本)』, 지금의 우리말로 풀면 이야기책쯤 되는 텍스트였다.

송나라 시절의 『화본』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것이 『전상삼국지평화(全相三國志評話)』 혹은 다른 이름으로 『설삼분(說三分)』3)이라는 텍스트였다. 책 위쪽에는 그림이, 아래 쪽에는 이야기가 적혀진 편집형식, 곧 이야기꾼이 책장을 넘겨가며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사이사이 스토리가 고조되는 대목에 이르면 노래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었다. 요즘 우리가 보는 소설책 『삼국지』 안에 그려진 옛 그림의 원조가 바로 화본에 수록된 그림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뒤 한족이 아닌 이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족이 세운 원(元)나라가 중국의 북방 일대를 점령하면서 중원 땅의 주인노릇을 하던 시절에 이르면서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이라는 세 영웅의 여러 이야기들이 대대적으로 개편되어 당시 수도이던 대도(大都) - 지금의 베이징 - 를 중심으로 이미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연극의 일종인 잡극(雜劇)4)이라는 장르로 들어온다.

 

도종의(陶宗儀)5)가 쓴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6)에는 당시 원나라에서 유행하던 잡극의 유명한 레파토리에 『삼국지』 관련 이야기가 40~50여 종류에 이르고 있으며, 내용도 풍부해져서 '도원결의', '다섯 관문을 지나며 여섯 장수를 베다', '삼고초려', '적벽대전' 등의 얼개가 이미 갖추어지고 있었음을 적고 있다.

『신전상삼국지평화(新全相三國志平話)』

오늘날 우리가 보는 본격 소설이라는 모양새를 갖춘 『삼국지통속연의』는 원나라에서 명(明)나라로 넘어오는 시기에 나관중(羅貫中)이라는 작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장회체(章回体)7) 소설이라 하여, 위촉오가 다투는 명장면을 부각시켜 240개의 대목으로 나누되 그것을 하나의 일관된 스토리로 연결시킨 대작 장편소설이 탄생되는 것이다.

 

나관중의 본명은 본(本)으로 '관중'이라는 필명을 '중국을 관통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경우, 중국의 정통성을 소설의 주요 기둥으로 삼는다는 뜻, 다시 말해 중국의 정통성이 한 고조 유방으로부터 유비로 이어지는, 한족 중심주의의 면모가 짙게 배어 있음을 엿볼 수도 있다. 이민족인 원나라의 다스림을 극복하고 한족의 천하를 세우겠다는 창작의도가 나관중의 텍스트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다.

이후 청나라에 이르면서 모종강(毛宗崗) 부자가 『삼국지통속연의』를 재차 문장을 가다듬고 내용을 좀더 풍부하게 만들어 새로운 텍스트로 각색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후한이 물러나면서 등장한 위ㆍ촉ㆍ오, 이들 세 나라의 영웅이 벌이는 각축전의 역사적 내용이 민간에서 새롭게 재창조해온 내력은 실로 오래다. 이천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문학사를 수놓은 장르와 양식의 진화를 『삼국지』는 그대로 밟아오고 있는 셈이다.

 

문학작품으로서의 삼국지와 그 갈등 구조

삼국지가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가지를 쳐서 연극이 되고 소설이 되는 과정에서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요소를 꼽자면 역시 인물 성격의 창조, 곧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인물의 캐릭터는 중국 문학에서 상징적 유형으로 구분되어왔는데, 이를테면 '베이징 오페라(Beijing Opera)'라고 불리는 경극(京劇)의 검보(臉譜)라는 분장술이 대표적인 것이다.

등장하는 배우의 얼굴에 울긋불긋한 색채를 칠하여 그 색깔이 바로 인물의 성격을 그대로 상징화하는 분장술을 가리킨다. 예컨대 관우의 얼굴은 붉은색 일색이다. 아름다운 수염의 주인공이라는 뜻인 미염공(美髥公)이라는 별명을 가진 관우의 얼굴빛은 텍스트에서 하나같이 붉은 대춧빛으로 그려진다. 그 대춧빛은 뜨거운 피, 곧 열혈로 이어지며 대장부의 기개와 형님으로 모시는 유비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나타낸다. 경극의 레파토리에 얹혀진 관우의 얼굴은 온통 붉은 빛으로 화장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장비의 얼굴에는 검은 색 화장이다. 검은 색은 직(直), 성격이 곧다는 의미로 풀면 된다. 이 말은 감정을 속내에 감추지 못하고 겉으로 늘 드러내는 캐릭터이기 일쑤이며, 성격이 불같아서 상대방과 다짜고짜 맞붙어 싸움을 벌이기를 일삼는 캐릭터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일전을 불사하는 그런 성격이다. 장비의 인물됨됨이가 검은 색으로 그려지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에 조조의 얼굴에는 흰 색이 대부분이다. 흰색은 교활한 캐릭터로 늘 자기 것을 먼저 생각하고 챙긴다. 이해타산에 밝은 인물인 것이다.

조조(曹操)|유비(劉備)

조조의 이런 성격은 유비와 좋은 대비를 이루며, 이런 대비가 바로 『삼국지』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갈등구조를 구성한다. 예컨대 조조는 동탁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하고 야반도주하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 노인 집에 우연히 신세를 지다가 술을 사러간 여백사 노인이 자신을 밀고하러 간 줄 알고 그 가족 및 하인들을 몰살한다.

 

또한 그걸로도 모자라 술병을 들고 돌아오는 여백사 노인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나서 동행하던 진궁에게 뇌까린 그 한 마디, 곧 "내 편에서 천하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릴지언정,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내게 등을 돌리게 하지는 못하겠소"라고 한 발언과, 유비가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한 일을 하지는 않겠소"라고 한 발언, 이들 두 발언이야말로 인물 성격을 단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조가 자신만의 이익, 곧 사리(私利)를 먼저 앞세우는 인물이라면, 유비는 천하공심(天下公心)을 표방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삼국지』의 작가인
나관중을 위시한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유비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은 물론이다. 이해타산에 기초하여 이득이 되는 부분을 취하는 인물 조조와, 충절과 의리를 앞세우는 유비 집단은 춘추 전국 시대에 틀이 마련된 제자백가 가운데 법가(조조)와 유가(유비)라는 두 사상의 한 기둥씩을 각기 부여잡고 있다고 해도 된다.

이런 인물 성격의 대비가 소설의 갈등구조 내지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모순으로 발현되는 대목은 얼마든지 있다. 예컨대 유비 집단 내부의 모순의 한 예로, '삼고초려'를 통해 유비의 품안에 안기는 제갈공명과, 관우ㆍ장비 두 형제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도 흥미를 끌 만하다. 제갈공명이 유비에 의해 처음으로 등용되어 군사, 다시 말해 군 지휘권을 부여받자 관우와 장비 두 장수는 볼멘소리를 한다.

 

글줄이나 읽던 '백면서생(白面書生)' 따위가 장수와 병졸들이 무예로 힘을 겨루는 전투에 대해 뭘 알겠느냐는 것이 불만의 요지다. 제갈공명이 처음으로 전투에 임한 박망파 싸움에서 고작 수천의 병마로 조조의 십만 대군을 물리치자 관우와 장비는 그제서야 제갈공명의 '실력'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들 사이의 갈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文)과 무(武)의 갈등이다. 무장과 문관 사이의 갈등이요, 무력과 작전 사이의 모순인 것이다.

이런 갈등구조는 예컨대 오나라 진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손권의 진중에서 격론이 벌어졌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유비와 동맹을 맺어 조조와 맞붙을 것인가 아니면 양자 사이에서 눈치를 볼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이 한창일 때, 대부분의 오나라 장수들은 유비와의 동맹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문관 출신 모사인 노숙이 나서서 유비와의 동맹을 강력히 주장하는 장면도 문무 갈등의 한 장면에 포함시킬 수 있다. 결단은 물론 오나라의 주인인 손권의 손에 달려 있다. 유비와의 동맹을 둘러싼 진중의 토론을 일단락짓는 장면에서 손권은 막사에 놓여 있는 탁자를 도끼로 내려쳐 두 조각으로 가르는 것으로 토론은 일단락된다.

문화의 텍스트로 읽는 삼국지

중국이라는 나라는 먹성이 대단히 발달된 나라이다. 과장이 좀 섞이기는 했지만, '네 발 달린 것은 책상만 못 먹고 날아다니는 것으로는 비행기를 제외하고는 다 먹어 치운다'는 말은, 그런 과장으로 인해서 더욱 실감나게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을 요약한 입담이 되기도 한다.

 

중국의 문인들은 먹을거리와 관련된 숱한 많은 글을 남겼는데 『삼국지』에서도 먹을거리를 원용해서 소설 안의 콘텐츠로 만드는 재주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장면이 적지 않다. 조조가 원소를 쳐부수고 나서 동작대를 짓고 자신의 도읍인 허창을 한창 꾸미는 장면에서 귤이라는 과실이 난데없이 등장한다. 조조의 졸개들이 죽어라고 날라 온 남방의 과실인 귤을 좌자라는 요술쟁이 노인이 돌로 만들어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장면은 실은 요술이나 마술이 아니라 중국의 자연지리에서 따와서 꾸며낸 이야기이다. "귤이 탱자가 된다"(橘化爲枳)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귤이 탱자가 된다"는 말은 귤을 가지고 요술쟁이가 수리수리 마수리 하고 재주를 피워 탱자로 둔갑시킨다는 말이 아니다.

 

오나라 곧 손권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나는 남방 과실인 귤이 북방으로 가면서 화이허(淮河)라는 강물을 지나면 기후대가 바뀌어 귤은 자라지 못하고 가지에 온통 가시투성이인 탱자 나무만이 자랄 수 있다는, 말하자면 중국의 자연지리에 기초한 식생(植生)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맛으로 치면 시큼털털한 탱자 열매를 달콤새콤한 귤에 비길 수 없다. 나관중은 그 고사성어로부터 탱자를 돌로 은근슬쩍 바꿔치기 하되 그런 농간을 좌자라는 요술쟁이 노인을 등장시켜 구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갈량(諸葛亮)

이런 음식 문화 이야기를 활용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제갈공명이 남만을 정벌하고 나서 승전가를 부르며 회군하는 길목에 노수라는 강가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며 빚었다고 하는 만 두(饅頭)가 그것이다. 화가 잔뜩 난 노수 강물의 귀신을 속이기 위해 사람의 머리를 바치는 대신, 사람의 머리 모양새를 흉내 내어 빚은 만두를 바치는데, 만두란 본시 사람의 눈을 속인다는 뜻의 '만(瞞)'이라는 글자를 쓰는 만두(瞞頭)였다.

 

그런데 제갈공명의 군사들이 제사를 지내고 나서 제사 음식인 만두를 먹자 노수 강물의 신은 왜 노여움을 푼 것일까? 이 의미도 지리학을 동원하면 풀린다. 촉나라의 군사는 낯설고 물설은 남만 땅에 와서 풍토병에 시달린 게다. 그러다보니 고향의 음식을 먹으면 기운을 차릴 텐데 하는 생각이 과학자이자 문관인 제갈공명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을 터이고, 대부분 황하 유역 출신인 제갈공명의 병사들이 고향 음식인 밀가루와 그 안에 양고기를 소로 넣은 만두를 배불리 먹고 나자 기운을 차린 것이라고 해석하면 말이 된다.

제갈공명의 승전, 곧 남만의 장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준 끝에 결국은 촉나라로 동화시키는 이 전략에도 중국의 문화적 힘이 아로새겨져 있다. 제갈공명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남만의 맹획이 기대는 작전이란 남만 지방의 풍토와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것이고 거기에 코끼리 등 남만에서 자라는 사나운 짐승까지 동원된다.

 

하지만 제갈공명이 취하는 작전은 일관되게 그 지방의 풍토에 대한 지리학적 파악에 기반을 둔 대처이다. 마침내 맹획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제갈공명의 품안에 안기고 마는데 그것은 촉군의 무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제갈량은 병사의 힘을 앞세운 무력(武力)과는 다른 차원의 문화전과 심리전을 함께 구사함으로써 중국의 남방을 중국의 영토 안으로 편입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동아시아의 문화유산으로서의 삼국지

『삼국지』라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이문열이라는 한 작가가 평역(評譯)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옮긴 책이 한국의 독자들 사이에서 물경 1,000만 부의 판매부수를 올렸다는 점이다. 최근 『실미도』니 혹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가 관객수 일천만을 상회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전에 판매부수 일천만 부를 넘긴 소설이 바로 『삼국지』다.

남의 나라인 중국 역사 이야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해서 읽은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삼국지』를 읽으면서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랄까 혹은 생각의 회로를 제 것으로 한 데서 그 의의를 찾는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각의 회로가 아니라 동아시아 공통의 그것을 복습했는지 모른다. 문화는 누구의 것인가? 만든 이의 것이기도 하고 누리고 향유하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삼국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실은 동아시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이 읽힌 콘텐츠의 하나인 셈이다.

더 생각해 볼 문제들

1. 동탁이 왕윤과 여포의 꾐에 넘어가 궁궐로 들어가기 전, 성문 앞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을 때 밖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듣는다.

천리초가 제아무리 푸르고 푸르러도(千里草 何靑靑)
열흘을 못 넘겨서 죽고 말겠네.(十日卜 不得生)

이 노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한자란 단어는 해체와 조립이 얼마든지 가능한 문자이다. 위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도 역시 그런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千' + '里' + '草' = '董'이 되고 '十' + '日' + '卜' = '卓'이 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동탁이 죽고 말리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일종의 퀴즈놀이인 셈이다.

2. 적벽대전에서 제갈량과 주유의 연합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화공(火攻)이다. 이 화공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갈량이 동남풍을 비는 제사를 올리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런데 주의를 요하는 것은 제갈량이 바람을 부르는 무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적벽대전이 벌어지던 그 날은 음력으로 동짓날이다. 동아시아의 고전적 사유 가운데 으뜸을 이루는 음양론에 의하면, 이 날은 음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로 이 날을 지나면 서서히 양의 기운이 다시 나타난다.

 

 양의 기운은 따스한 기운으로 그 기운은 동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있다. 조조의 군사는 적벽강을 따라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진군해오고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은 동남쪽에서 그들을 맞이하는데, 불화살이 서북풍을 받으면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지만 동남풍을 받으면 적진으로 날아들 수 있는 원리가 바로 동짓날 음양의 기운의 교차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3. 『삼국지』에 등장하는 말(馬)의 의미는?


"수레 천 대를 가진 나라는 제후의 나라요, 수레 만 대를 가진 나라는 천자의 나라"라는 말이 있다. 수레의 보유량이 곧 국력을 의미하던 것이 춘추전국 시대이다. 수레는 오늘날의 탱크와 물류를 책임지는 기차 혹은 자동차를 합친 개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수레를 끄는 것이 바로 말이다. 게다가 말을 탄 병사 곧 기병의 전투력이 보병과 비할 바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명마인 적토마는 본디 동탁의 소유였다. 동탁은 서량 출신으로 서량은 아라비아 산 말을 많이 보유한 지방이었다. 동탁이 한나라 황실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말의 보유력에 기댄 것이라고 보아도 된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듯이 동탁이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낙양의 궁궐로 가던 도중 수레바퀴가 부서지고 말이 고삐를 끊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역시 동탁이 자신이 의지하던 말의 힘이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적토마가 여포에게서 조조로, 조조에서 다시 관우로 주인을 바꾸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말이라는 짐승이 『삼국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추천할 만한 텍스트

『삼국지』,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3.

각주

 

1) 진수(233~297)는 사천 출신으로 촉나라에서 관각령사(觀閣令史) 등 문서와 역사를 다루는 직책을 맡았다. 이후 위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들어선 뒤에도 저작랑(著作朗), 치서시어사(治書侍御史) 등 비슷한 벼슬을 지내면서 역사의 기술에 힘을 기울였다.
2) 배송지(372~451)는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인물로 하동 태생이다. 국자박사(國子博士), 중서시랑(中書侍郞) 등을 지내면서 임금의 명을 받아 『삼국지』의 주석을 보탰다.
3) 한자 그대로 풀면 셋[三]으로 나누어진[分] 이야기[說]라는 뜻인데 셋이란 물론 위, 촉, 오의 세 나라를 가리킨다.

4) 원나라 시대에 유행한 연극의 일종이다.
5) 도종의는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엽의 문학인으로 절강성 출생이다.
6) 원나라 당시의 문학, 역사, 예술, 과학 등 다방면에 관련된 자료들을 기술한 저작으로 도종의 가 송강이라는 곳에 살면서 한가할 때면 나무 아래서 쉬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나뭇잎을 따서 적어 깨진 항아리에 모아두기를 10년간이나 했다. 항아리 수가 수십 개가 되자 이것들을 모아 기록하여 30권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7) 중국의 장편소설의 체계를 가리킨다. 도입부에 보통 7언으로 제목을 달고 이야기의 첫 머리에서 '화설(話說)', '각설(却說)' 등으로 시작한다. 한 장회가 각기 독립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 자체로 완결된 모양새를 지닌다. 장회체의 산문을 보강하는 시 구절이나 당시 유행하던 노래 구절을 삽입하여 독자들의 주의력을 환기시키는 장치도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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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심산 진로 오행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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