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목요 문화 초대석에 출연한 봉준호 감독은 "프랑스 극장협회에서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따라서 옥자를 영화로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했는데 그 말에 대해 뭐라고 반론하셨습니까?"라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극장에서 상영한다"라고 답했다며 웃었다.
그렇다. <옥자>는 극장에서 상영한다. 그러면 6월 29일 극장 개봉과 동시에 '영화가 아니었던' <옥자>는 영화가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대형 멀티플렉스의 횡포로 극장을 잡지 못해 스크린에 걸어 보지도 못한 채 부가판권시장(DVD, 비디오 온 디맨드, 텔레비전, 스트리밍 서비스 등)으로 직행하거나 아예 몇 년째 창고에서 썩고 있는 숱한 영화들은 영화가 아닌 것인가?
더 기가 막힌 코미디는 바로 그 몹쓸 횡포를 제멋대로 부려 온 주체인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빅 3가 배를 맞춰 '<옥자>와 넷플릭스가 한국 영화계의 관행을 깨고 유통구조를 흐린'다고 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데는 몰라도 CGV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유통구조를 흐린 '원조'가 대체 누군데? 거대 자본을 무기로 블록버스터 개봉, 디지털 상영 체계, 멀티플렉스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극장 인프라 등을 앞세워 영화 시장을 먹어치운 게 누군데? 그래 놓고 블록버스터 한 편을 수백 개 극장에 죽 깔아놓은 채, 장사가 안 되는 영화(예술, 인디, 다양성)들은 퐁당퐁당 상영이나 제한 상영으로 "개봉했네-" 생색만 실컷 낸 후 부가 판권 장사에 열을 올린 것들이 대체 누구더란 말인가? 개봉은 했다는데 도대체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상영하는 곳이 없어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본 것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이건 마치 매대에 상품 하나만 잔뜩 진열해 놓고 "마음껏 고르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짓 아닌가.
그런데 자기들이 이익을 누려야 할 '홀드백' 기간 없이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 개봉을 하는 (넷플릭스의) 횡포를 막겠다며 세 곳 멀티플렉스 체인이 담합해서 <옥자> 상영 보이콧을 선언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이건 명백한 불공정 행위 아닌가? 이런 걸 갑질이라고 안 하면 무엇이 갑질인가? 거기에 가증스럽게 '을' 코스프레나 해대는 꼴이라니.
자기들 밥그릇 못 챙기게 됐다고 관행을 앞세워 관객을 상대로 파워 게임을 하고 있다. 너희가 우리 극장 아니면 어디 가서 <옥자>를 보나 두고 보자, 그 심보 아닌가. 그렇게 공공성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척하는 그들이 한국 영화계의 미래 운운하면서 실은 '관객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권리'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한 것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넷플릭스라는 거대 디지털 플랫폼에 무시당했다고 분개하면서 정작 관객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 밥벌이를 시켜주는) 관객의 권리를 개무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영화계'라는 유기적 총체에서 '극장'의 역할과 지위를 강조하면서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영상물(그것이 무엇이든)은 틀지 않겠다는 것이 횡포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횡포한 말인가? (부가판권 시장에 선행해) 극장에서 일정 기간 상영할 극장의 권리는 중요하고 관객들의 볼 권리는 중요하지 않은가?
CGV와 롯데시네마 그리고 메가박스가 <옥자> 상영을 하든 말든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 지구 구석탱이까지라도 가서 나는 <옥자>를 볼 테다. 넷플릭스 동시 개봉의 첫 시청자가 되고도 싶지만 일단은 큰 화면으로 '예쁜 돼지'를 보고 싶다. 아마도 오늘 대한극장이나 서울극장에서 그 '예쁜 돼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디 니들 멋대로 잘 해보라지... 지금 이 순간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은 눈알 빠지게 변하고 있다.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이란 몸집 큰 공룡이 그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잘 살아남는지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
프랑스 극장협회는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옥자를 영화로 인정하기 어렵다'라는 것이 칸영화제의 공식 입장이었다. 물론 이 정치색 짙은 선언에는 영화 외적인 요소들(프랑스 극장의 경우 자국 영화의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DVD, 비디오 온 디맨드, TV,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등 모든 흥행수입 중 일부를 보조금 명목으로 내야 한다고 법률에 정해놓고 있다)에 대한 고려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그네들에게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즉, 법을 어긴) 영화'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란 무엇인가?
<옥자>는 영화관을 뛰쳐나간 첫 번째 (한국) 영화가 될 것인가?
봉준호 감독은 TV로 영화를 접하며 자란 첫 세대의 감독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을 보며 '영화의 모든 것'을 배웠노라고 고백했다. 비디오 가게 점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테이프 영화를 보며 영화의 ABC를 공부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화가 아닌가?
바야흐로 미디어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고 있다. 그 태풍의 눈 중심에 있는 디지털 플랫폼 역시 나날이 진화하며 다양한 변종을 쏟아내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오프라인 매장을 고사시키며 유통 시장의 맹주가 된 게 엊그제 일인데 벌써 모바일 플랫폼에 그 자리를 내주고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사용자들은 무자비하고 냉정하다. 조금이라도 새롭고 편하다 싶으면 기성의 것에 대한 충성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열광한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옛 애인 같은 '싸이월드'와 '야후'를 보라. 신인류는 배신을 밥 먹듯 하는 무시무시한 실속파 족속들이다. 이제 미디어 생태계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의 세계로 진입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미디어와 새로운 플랫폼이 기존의 것들을 깨뜨리거나 전복시키면서 자기 영역을 필사적으로 넓히고 있는 격변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회화가 지배하던 시대, 사진은 이미지의 이단아였고 영화는 사진의 기괴한 사생아였다. 5센트 짜리 오락거리(니켈로디언 영화)였던 영화가 현대 예술의 총아가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현재 영화가 누리고 있는 장르의 지위 역시 만인의 투쟁을 통해 기존의 상식과 관행을 파괴하고 획득한 노획물이다. 매체와 매체 간 생존 경쟁이 하이브리드와 퓨전 등 '융합'이라는 키워드 아래 하나로 묶이거나 갈리면서 변화를 이끌어 가는 이 시대에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는 영화가 아니'라는 순혈주의라니. 웃기는 일이다. 도대체 영화라는 게 뭔데?
작년에 인상 깊게 본 글이 있다. 듀나의 <고효주의 롱보드 동영상을 보고>(2016년 4월 한겨레). 그 글에서 듀나는 그 매혹적인 결과물(고효주의 롱보드 동영상)에 매료된 채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본 영화들 중 고효준 씨가 무료로 올린 이 1분짜리 영상만큼의 가치에도 도달하지 못한 작품은 수두룩하'다고 고백한다. 이 지적은 영화의 미래에 대한 의미심장한 (영화평론가의) 자백이다.
2013년 12월, 씨네큐브를 마지막으로 서울 극장가에서 필름 영사기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감독들이 제작비 절감과 창작의 자유를 위해 필름 대신 비디오카메라(혹은 디지털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다시 영화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는 늘 위기의 파도 속에서 출렁이며 생존해 왔다. 사진의 위협 속에 본질을 고민한 회화가 제 갈 길을 찾았듯 TV의 등장에 맞서 영화는 70mm 대형 화면과 시네마스코프 그리고 3D로 생존을 모색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새롭게 리뉴얼 한 3D와 아이맥스로 이어졌고 존멸의 위기 앞에서 영화는 늘 '영화적인 것,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존폐의 위기가 본질을 강화하는 역설 속에서 영화는 이제껏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마누라의 권능 빼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반영구적 미디어라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던 CD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했고, 다 죽은 줄 알았던 LP가 인공호흡기를 떼고 갑자기 부활했다. 사용자들의 기호는 변덕스럽고 봄날 치맛자락보다 가볍게 팔랑거린다. 대형 스크린에 빛을 쏘고 어둠 속 밀폐된 공간에 모여 앉아 꼼짝없이 두 시간을 인질처럼 갇혀 관음증을 발산하던 극장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 '(알파고에게) 개인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류가 진 게 아니'라던 이세돌 기사의 말처럼 죽어가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극장이란 시스템이다. 기계 몸을 얻었으되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은하철도 999>의) 철이처럼 아이폰으로 찍었든 소니 액션캠으로 찍었든 도구가 무엇이든 어디에 담겼든 영화는 영화이고 영화여야 한다. 종이책만이 책이 아니고 갑골에 새겨졌든, 대나무를 긁었든, 크레마든, 카르타든, 아이패드든, 손톱만 한 디스크에 텍스트를 담아 전자기 판때기로 보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담아 전달하면 그것이 책이다. 형식이 늘 내용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영화가 아닌가? 필름을 긁어 흠집을 내고 화약약품을 부어 이미지를 만든 Stan Brakhage의 <독 스타 맨>은 영화가 아닌가? 아이폰으로 촬영한 박찬욱의 <파란만장>이 극장에 걸리면 영화이고 온라인상에서 파일로 돌면 영화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단정지을 수 있는가? 극장에서 상영해야만 영화라고 누가 감히 정의할 수 있는가?
<홀리 모터스>의 오스카는 파편으로 뒹구는 마네킹들 사이로 널브러진 온갖 종류의 영화 카메라 잔해 속에서 영화(映畵)의 화려했던 영화(榮華)를 추모한다. 홀리 모터스에 유령처럼 출몰해선 오스카에게 질문을 던지던 사내(미셸 피콜리)에게 오스카는 말한다. 카메라가 너무 작아졌다고,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는다고, 이제는 가벼워서 아무나 영화를 찍을 수 있다고,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무너지고 있다고. 35밀리 필름의 시대는 끝났다. 16mm 카메라가 나왔을 때도 그랬고, 디지털카메라가 주류가 된 지금도 그렇다. '영화 같은 영화의 시대'는 갔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예언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캠코더로 영화를 찍어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이 시대엔 영화에 대한 고전적인 기대가 뒤틀려버린다. 지금 인터넷엔 위대한 거장들이 남긴 어마어마한 성취에 맞먹는 클립들이 수두룩하다. 전에는 할리우드만이 가능했던 기술을 지금은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고효주의 롱보드 동영상> 글 중 발췌).' 갤럭시 8의 5.8인치 화면으로 봐도, 동양 최대 아이맥스 영화관 스크린으로 봐도 영화는 영화다. 화면의 사이즈가 작다고 영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영화는 늘 변화와 확장성을 무기로 끝없이 변신하며 살아남았고 살아남을 것이다. 그 형태가 무엇이 될지 어떻게 변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극장 시스템이 죽었다고 영화가 죽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가오나시와 같은 확장성을 포기하는 순간, 영화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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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스템은 공룡 같은 극장 시스템의 빈틈을 파고든 새로운 유형의 영상물 플랫폼이다. 그들은 1억 명의 충성스러운 가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유튜브에 열광하는 새로운 세대는 집에서 혹은 모바일로 편히 보는 넷플릭스의 상영 방식에 호의적이다. 그들에게 (스크린) 사이즈의 문제는 편의성보다 중요한 절대 조건이 아니다. <왕좌의 게임>의 경우에서 보듯, 규모나 물량 등 생산면에서 그리고 그 생산물을 즐기는 관객들의 양적 팽창 면에서 이미 미드'가 영화의 권좌를 잠식한 지 오래다. 그러니 마틴 스콜세지 같은 거장도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해 <아이리쉬맨>이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찍기로 했다지 않은가. <옥자>의 경우에서 보듯 막강한 자본력, 창작자의 완전한 자유 보장, 안정적 배급망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앞세운 넷플릭스의 영상물 시장 정복은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그 세계의 구조와 본질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이다.
물론 여전히 극장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영화를 꼭 극장 스크린에서 상영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형 디스플레이나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DVD나 VOD 서비스 혹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로 영화를 보는 것 역시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 우리는 당분간 이 다양한 감동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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