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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공부의 신(神)이 되다

심산멘토 2017. 2. 1. 14:41

공부의 신(神)이 되다      

 

 

 

한 달 전 아내로부터 무시를 당한 후 며칠동안 서운함을 넘어선 울분의 감정상태가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아내와 수십 년을 살아오는 동안 가끔씩 아내는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분명히 아내는 나에게는 현모양처가 되지 못하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했었다.


아내가 들려준 외사촌 여동생의 근황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아내의 외사촌 여동생은 전국은행연합회 상무로 승진되어 있었다. 은행연합회에서 여성 상무가 탄생된 것은 연합회가 설립된 이후 초유의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화제가 되어 많은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를 했음은 물론이었다. 전에도 그녀가 부장으로 승진했을 때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연합회 설립 이후 첫 여성 부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아내의 외사촌 여동생은 서울의 명문 여대를 졸업 한 후 은행연합회의 임원 비서실의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연봉 1억 5천만원을 받는 상무의 자리에 앉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접했을 때 아내는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에서 자신을 돌아다보았을 것이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아내의 여동생은 직장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꾸준하게 공부를 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그녀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었기 때문에 금융과 경제에 관련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표현해서 공부하는 자체가 죽는 것처럼 싫었다고 한다. 아내가 자기 외사촌 여동생의 이야기를 한참 하고 있을 때 '공부하는 것이 죽는 것처럼 싫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되어 아내의 말에 끼어들어 그런 기분을 내가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그런 데에다 비교하지 말라며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돌변하여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공부한답시고 식구들 힘들게 해놓고는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며 휑하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참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대꾸할 말조차 나오질 않아 거실에서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해서 서운해지기 시작했고 그 감정은 결국 울분으로 변하고 말았었다.   


내가 지난 20여년 동안 기초의학 분야와 생명과학, 생리학, 신경과학, 유전학, 면역학을 공부하는 데 죽을 힘을 다했다는 사실을 아내는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아내의 시선에는 참으로 하찮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책을 읽는 일을 쓸데없는 일로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책을 들여다보면 돈이라도 생겨?"

 

라는 말로 나의 사기를 무참히 꺽어버리고는 했다. 그 때 둘째 딸이 나이가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아내와 똑 같은 말을 하기도 했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이 죽는 것처럼 싫은데, 큰 맘 먹고 책을 펼쳐들면 아내는 그게 못마땅해 입에서 나오는대로 나를 질타하고는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식구들의 눈을 피해 책을 읽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야만 했었다. 책을 읽는 것도 죽는 것처럼 싫은데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일도 정말이지 싫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기초의학 또는 생명과학을 공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막연하면서도 강렬하게 압박하는 당위감이 나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은 공부하는 것으로 이끌고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되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것은 1995년의 여름이었다. 그 당시 신문사의 사지기자로 재직하고 있었을 때였다. 직작생활을 길게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던 중에 자기개발을 해야만 된다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느낌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엉뚱하게도 침술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책과의 씨름을 하게 되었다. 침구학, 동양의학, 한의학, 해부학, 생리학, 생명과학과 관련된 전문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전문서적을 읽는 일이 너무 무모하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만 했다. 책을 읽기는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를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공부하는 것을 수차례 포기를 했었다. 그럴 적마다 나머지 인생을 되는대로 살기로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압박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다시 나는 죽기보다 더 싫은 공부를 하기 위해 책을 내 앞으로 끌어온다. 이런 식으로 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을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를 해왔다.


아내의 외사촌 여동생은 죽는 것처럼 싫은 공부를 하여 연봉 1억 5천만원을 버는 상무로 출세를 했다지만, 내가 20여 년 동안 죽음보다 더 싫은 공부를 하여 지금 이룩한 것은 무엇인가? 아마 나의 아내는 지금의 내 모습이 보잘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한 가치성을 눈꼽만큼도 평가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나의 아내는 내가 20여 년 동안 공부한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집 안에서 혼자 공부하는 행위를 시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여려운 학문을 혼자 공부하여 터득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가다 아내에게 내가 공부했던 분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피상적으로 공부한 내용에 관해서 아는 척하지 말라고 핀잔을 준다.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내가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공부한 분야는 지금은 전문가의 수준에 이러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전문가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라고까지 생각할 때도 있다. 내가 지난 20여 년 동안 공부해 왔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 할 정도로 그렇게 철저하고 완벽하게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 누구에게나 공부를 한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부는 어떻든 상당한 부담을 안겨다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 죽는 것처럼 싫은 것이다. 그래서 99%의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 싫은 공부를 피해 갔기 때문에 그저 그렇게들 특별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죽는 것처럼 싫지는 않다. 그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공부를 하면 사기가 진작되고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나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살아갈 가치가 없는 존재이다. 그만큼 나는 공부를 함으로써 삶의 희열를 느끼고 지고의 행복을 느낀다. 공부하는 행위는 처음엔 죽는 것처럼 싫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단계를 지나면, 즉 많은 지식과 정보가 뇌에 축적된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예술가가 창작 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희열를 느끼게 된다.

처음에 공부하는 것은 어떤 지식을 주입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몸부림이다. 그게 잘 안 되니까 지겹다 못해 죽는 것처럼 싫은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뇌에 축적이 된다. 방대한 지식과 정보가 축적된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지겹게주입하려고 애를 쓰는 행위가 아닌, 축적된 지식과 정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합하고 확장해 가려는 창작 행위와 같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고안해 낸 우공침술은 방대하고 정확한 신경과학적 지식과 면역학적 지식을 확장한 결과에 의해 이 세상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침법으로 창발된 것이다.


많은 지식과 정보를 공부를 통해 뇌에 저장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과 정보들을 저장한 채로 방치하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저장된 지식과 정보들을 통합하고 확장시켜야 가치가 생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뇌 안에 저장된 지식이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것은 단순하게 지식을 주입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뇌 안에 많은 정보와 지식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저장된 지식과 정보들을 통합해주고 확장시켜 주는 것이다. 그럼으로 하여 창의적인 생각이 발상되어 늘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일상의 생활이 상투적이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이다. 그래서 매일 벌어질 일에 기대를 갖게 되며 그 기대감은 행복과 희열로 승화되는 것이다. 아내의 외사촌 여동생이 죽는 것처럼 싫은 공부를 하여 출세를 했다지만 지금도 그렇게 공부를 계속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에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고 여전히 공부하는 것이 죽는 것처럼 싫다고 한다면 아직 더 많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공부를 함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말이다.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게 죽는 것처럼 싫기 때문이다. 공부를 함으로써 내가 살아 있다는 가치를 느낄 뿐만 아니라 지고의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출처 : 심산 진로 오행 컨설팅
글쓴이 : 심산멘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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