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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대산 선재길

심산멘토 2017. 2. 1. 00:53


천년 고찰로 이어지는 숲길은 그윽하다. 시린 허공에서 내려온 눈이 전나무 숲을 덮었다. 눈 내린 숲길에 고요가 깃들었다. 나뭇가지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눈꽃을 뿌리니 길을 걷는 나그네의 마음은 경쾌하다. 오대천 얼음장을 뚫고 청량한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오대산 선재길은 지혜와 깨달음을 구하는 길이다. 길을 걷고 나면 온몸에 맑은 기운이 서리고 욕심 하나쯤은 내려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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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전나무 숲길

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 9km의 오솔길이다. 길은 월정사나 상원사 어디에서 출발하여도 무방하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일주문부터 나타나는 전나무 숲길은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산문(山門)이기도 하지만, 겨울 오대산의 백미인 눈 쌓인 전나무 숲으로 마음이 먼저 달려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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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오대산의 백미인 월정사 전나무숲길 >

 

전나무 숲길은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km 의 거리. 직선으로 쭉쭉 뻗은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부안 내소사나 청도 운문사에서 만나는 전나무보다 월정사 전나무 숲 풍경이 더 운치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특히 겨울 풍경이 아름답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흰 눈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우람하게 서있다. 어두컴컴한 숲길은 비늘 잎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불을 밝히듯 환하다. 호젓한 전나무 숲길을 소리 없이 걷는다. 서늘한 기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려온다. 청량한 계곡물 소리가 찌든 마음을 맑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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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을 비운 전나무는 태풍에 쓰러졌어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600년의 세월을 품어온 전나무 한 그루가 2006년 태풍에 쓰러져 드러누웠다. 고목은 속을 텅 비웠다. 나무는 속을 비우고 또 비워서 몇 백 년을 살다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포토존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무의 빈 공간에 들어가거나 부러진 고목 사이에서 사진을 찍는다. 속이 빈 나무를 교훈 삼아 비움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삼보일배, 세 걸음을 걸은 뒤 한 번씩 눈 위에 엎드려 기도한다. 첫 번째 걸음에 사랑을 내려놓고, 두 번째 걸음에 미움을 내려놓고, 세 번째 걸음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스님의 목탁소리가 청아하게 숲을 울린다. 비늘잎에 쌓인 눈이 떨어진다.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의 기도가 간절해 보인다. 이 길을 걸으며 마음의 때를 씻고, 마음 속 가득히 채워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부처님의 세계로 다가선다.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

전나무 숲길이 끝나는 곳에 월정사가 다소곳하게 들어앉았다.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 (643)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창건하였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히 보고 석가모니불의 정골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그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에 따라 이곳 오대산에 들어와 적멸보궁에 사리를 봉안하고 초가를 지어 문수보살을 다시 보고자 하였으며,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다. 월정사는 지금까지 1400년 동안 자장율사부터 근대의 한암, 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지식인들이 수도정진 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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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월정사는 고즈넉하다. 석조보살좌상의 공양은 사시사철 한결같다>

 

월정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국보 제48호로 지정된 팔각구층석탑과 그 앞에 있는 석조보살좌상이다. 팔각구층석탑은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했던 다각다층석탑의 하나로 고려초기의 석탑을 대표하는 양식이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은 고려 불교문화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9층으로 된 몸돌과 지붕돌은 늘씬한 높이에 비해서 안정된 느낌을 주며, 하늘을 향한 모습이 경쾌하다. 석탑 상륜부 장식이 완벽하고 화려하며 상하 균형이 잘 잡혔다. 각층의 지붕돌 모서리 하단에 풍경을 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풍경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마음이 평안해 진다. 팔각구층석탑 앞에서 보물 139호 석조보살좌상이 공양을 하고 있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보살은 약왕보살로 알려져 있다. 약왕보살은 좋은 약으로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병을 낫게 해준다. 자신의 온몸을 태워 1200년 동안 세상 구석구석을 비추었다는 '일체중생희견보살'이 공덕을 쌓아 약왕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석조보살좌상은 왼쪽 팔꿈치는 무릎에, 오른쪽 팔꿈치는 동자상에 얹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하늘옷을 걸친 앞가슴은 목걸이로 장식했다. 몸은 아침햇살처럼 눈부시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정성으로 섬김을 다하는 모습은 저녁 범종소리처럼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선재길, 지혜와 깨달음을 찾아가다

월정사 불유각을 지나서 서쪽 출입구로 나오면 상원사 가는 길이다. 선재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겨울철에 눈 쌓인 도로는 차량이 다녀서 미끄럽다. 오대천은 꽁꽁 얼어붙었다. 바람은 윙윙 소리를 내며 골짜기를 타고 오른다. 고요가 감돌고 새들조차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월정사 부도군을 둘러싸고 있는 전나무는 장엄하다. 열반한 스님들을 기리는 듯 엄숙한 기운이 서려있다. 각기 모양이 다른 부도들은 머리에 흰 눈을 이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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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선재길은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던 옛길이다. 선재동자처럼 깨달음을 구하러 가는 길이다>

 

반야교를 건너면 회사거리다. 회사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목재회사가 있던 곳으로, 한때는 벌목공과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던 동네였다. 오대산 선재길 표지판은 회사거리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있다. 주차장 오른쪽으로 오대천을 건너는 나무다리가 놓였다. '깨달음, 치유의 천년 옛길! 오대산 선재길'이라고 쓰인 아취를 지난다. 여기서 상원사까지 8km 조금 넘는다. 이 길은 본래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가던 옛길로,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정비하여 2013년 10월에 '오대산 선재길'로 개통하였다. '선재'는 불교의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선재동자는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떠돌며 53명의 현인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으니 선재길은 '지혜의 길'인 셈이다. 오대산 선재길은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후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없이 오르던 길이다. 나옹선사(1320~1376), 한암스님(1876~1951), 탄허 스님(․1913~1983) 등 많은 수도승이 오갔으며, 화전민과 나무꾼들이 발로 다져 만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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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겨울에 선재길을 걸으면 저절로 마음의 때가 벗겨진다.>

 

눈이 두껍게 쌓인 나무다리를 건너서 본격적으로 선재길을 걷기 시작한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길은 오대천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나있다.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오대산 비로봉이 보일락 말락 한다. 한겨울 선재길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 사람 다닌 흔적이 적다. 눈을 헤쳐 나가는 것은 힘들지만 숲길은 한없이 부드럽다. 오대산은 나무의 종류가 다양하다. 신갈나무, 서어나무, 거제수나무, 물푸레나무, 황벽나무, 박달나무, 다릅나무 등이 저마다 이름표를 붙이고 눈꽃을 매달았다. 겨울 숲은 사람보다 쉽게 짐을 내려놓은 나무들이 있어 눈물겹다. 엄동의 시절에 그들은 모든 것을 벗고 가장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하늘을 향하여 손을 쳐들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항상 감사하고 찬송한다. 그런 나무들이 우거진 선재길은 엄숙하고 경건하여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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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메기 소는 순백의 빛깔로 물들었다. 얼음 위를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보메기' 소(沼)에서 징검다리를 건넌다. 태백의 검룡소가 한강의 시원(始原)으로 확인되기 전까지, 한강의 발원지로 대접받던 오대산 우통수 물이 힘을 보탠 오대천 계곡은 두껍게 얼어붙었다. 다른 계절이라면 맑은 계곡물 위로 얼굴을 비춰가며 한 걸음씩 발을 떼었겠지만, 디딤돌이 미끄러워 얼음 위로 조심스럽게 건너간다. 보메기 소는 선재길 구간에서 가장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바위에 부딪치며 힘차게 흐르던 오대천 상류의 물이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른다. 계곡의 폭은 넓어지고 수면은 잔잔하다. 너른 암반이 펼쳐지고, 아슬아슬 절벽에 붙은 소나무는 하얀 종이 위에 그린 수묵화 같다. 길을 걷는 사람도 풍경의 일부가 된다. 푸르고 울긋불긋한 풍경은 다른 계절의 모습이고 지금은 시린 겨울이다. 이곳에서 순백의 빛깔로 몸과 마음이 물들면 모든 것을 가진 듯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속세의 고민 같은 것은 아득하게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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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에서 만나는 섶다리.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계곡과 하나가 되는 걸음걸음이다.>

 

선재길은 다시 협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 숲 속으로 이어진다. 길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의 도로와 나란히 간다. 도로와 선재길을 연결하는 섶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섶은 솔가지나 작은 나무의 잎이 달린 잔가지를 말한다. 섶다리는 추수가 끝난 후에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을 세우고, 소나무나 참나무로 만든 상판 위에 섶을 엮어서 깔고 흙을 덮어 만든다. 겨우내 강을 건너다가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가므로 '이별다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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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은 내내 오대천을 끼고 걷는다. 수묵의 세상은 상원사로 갈수록 깊다.>

 

선재길은 오대산장 앞에서 선재교를 건너 잠시 차도를 걷게 된다. 선재길에서는 길을 걷다가 지치면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섶다리 혹은 나무다리를 건너서 차도와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오가는 차량에 편승하거나 시내버스를 이용할 수 있으니, 선재길에서는 산속에 혼자 소외당하지 않는다. 오대산장을 지나면 선재길은 계곡을 오른쪽으로 두고 간다. 바위가 많은 비탈길이다. 북쪽 사면이라 한겨울에는 눈이 많이 쌓이니 이 길을 비껴서 상원교까지 도로변을 걷는 것이 안전하다. 상원교를 지나서 차도와 오솔길을 두어 차례 들락거린다. 눈 위에 푸른 잎을 내민 조릿대 군락과 쭉 뻗은 전나무 숲을 만난다. 조선시대 김홍도가 그린 '상원사' 그림에도 절 주위는 온통 전나무다. 푸른 기상으로 추위와 맞서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보이면 상원사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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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표지석(왼쪽) / 돌계단에 온통 신경을 쓰고 오르노라면 번뇌가 생길 여지가 없다(오른쪽)>

 

'오대산 상원사' 표지석 뒤로 선재길은 조금 더 이어진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상원사 청풍루에 이르는 길은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다. 이 길은 경사가 급한 돌계단으로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발끝에 신경을 써야 한다. 10km의 눈길을 걸어왔으니 몸은 지치고 다리는 무겁다. 돌부리에 걸리지 않으려고 발걸음에 집중하며 오르는 길에서 번뇌가 생길 여지가 없다. 코를 박고 한 걸음씩 천천히 오르다 보면 머릿속의 번뇌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마침내 상원사 문수전에서 지혜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마주한다.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길을 걸어 온 선재동자가 바로 자신임을 일깨워준다.

 

상원사 이야기

상원사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삼국유사에 상원사의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조선 세조와 얽힌 일화가 있다.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후에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였다. 많은 불사를 일으키고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불서의 간행에도 힘을 기울였다. 세조가 만성 지병을 고치려고 상원사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히 보고 병이 나았으며, 참배 중에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흔적은 세조가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 둔 관대걸이, 석조고양이상, 목조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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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길 끝 상원사 문수전에서 문수보살을 마주 한다.>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된 상원사동종(국보 제221호)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범종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음향이 맑고 깨끗하다. 비천상은 경쾌한 모습으로 구름 위에서 하늘 옷자락을 흩날리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종을 매다는 고리를 '용뉴'라고 하는데 입을 딱 벌린 용의 힘찬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유리 상자에 보관되어 있는 동종을 가만히 바라보면 종소리 파문이 마음을 울리는 듯하다.

 

 

[여행정보]

◎ 코스 : 월정사 일주문→월정사→상원사

◎ 거리 : 10km (3시간 30분소요)

◎ 대중교통

- 서울 기준 : 동서울터미널→진부 시외버스 / 일 25 회(2시간 15분소요)

- 진부→월정사 시내버스 / 일 14 회(상원사행 9회)

◎ 추천숙박: 월정사 템플스테이(033-339-6606), 알펜시안리조트(033-339-0000), 켄싱턴플로라호텔(033-330-5000),

오대산 펜션(033-334-5332), 파크하이야트모텔(033-336-5600), 캘리포니아모텔 (033-332-8481)

◎ 음식점: 평창 특산물인 산나물, 황태요리 음식점이 많다.

부일식당(033-336-7232), 오대산산채나라(033-334-9524), 오대산산채일번가(033-333-4604), 오대산 가마솥식당(033-333-5355, 황태해장국), 우리식당(033-334-6655, 송어회), 고바우식당(033-335-8488, 막국수)

◎ 주소: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월정사)

◎ 여행적기: 사계절(겨울)

◎ 문의: 033)332-6418(국립공원관리공단 오대산사무소)

 



 
출처 : 심산 진로 오행 컨설팅
글쓴이 : 심산멘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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