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당

기문둔갑(奇門遁甲) 해제

심산멘토 2018. 1. 11. 13:29


                    기문둔갑(奇門遁甲) 해제

 


세상 만물은 음양오행에 속하지 않는 것이 없고, 적용되지 않는 부분이 없으니

기문둔갑이라고 하여 음양오행을 벗어난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의 기본적인 틀이 九宮(구궁)을 위주로 하며 음양오행, 수리학, 주역, 등

여타 易術을 포괄하니 그 응용범위가 넓고 쓰임이 다양하다.

 

우도(右道)기문은 능히 바람을 일으키고 비도 내리며,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해서 짐승이나 연기로 변하는 등 신출귀몰한다고 하나 현재로서는 제대로 이어져서 전승되어 온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명리학이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寄門遁甲은 방위를 다루는 학문이라,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비해,

방위는 사람의 의지대로 선택할 수가 있으니

명리학은 숙명론에 가깝고,

방향과 위치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선택할 여지가 있으니

奇門에는 개운법, 처세술, 방액법, 戰術學 등이 있게 된다.

 

기문은 그 폭이 넓어 人事에도 적용하여 운명학으로도 활용하는데,

九宮과 八卦의 다양한 변화에 天時, 地宜, 人和의 天地人 三才를 더하면

당면한 일의 점사(占事)부터 평생운의 흐름까지 어디 한 곳이라도 놓치는 곳이 없다.

 

奇門에 통달하면 天機를 훔치고, 귀신까지 속이는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奇門遁甲/주역의 점측술에서 유래한 일종의 전설적인 점측술이다.

 

기문둔갑이라 할 때

기(奇)란 천간 중 乙`丙`丁을 삼기(三奇)로 삼는 것을 말하고,

문(門)이란 8괘의 변화하는 모습인

개(開), 휴(休), 생(生), 상(傷),두(杜), 경(景), 사(死), 경(驚)의 8문을 가리킴으로

기문(奇門)이라 하였다.

 

둔갑이라 할 때의 둔(遁)은 숨는다는 뜻이며,

甲은 십천간의 처음인 甲을 홀로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점을 칠 때에 甲은 한 위치를 점하지 않고

戊, 己, 庚, 辛, 壬, 癸의 六儀를 구궁, 팔문, 팔괘, 구성에 나누어 배치시키며

天, 地, 人事의 길흉화복을 점친다.

 

기문둔갑은 ‘역위건착도’의 ‘태을구궁’에 그 연원이 있는데,

관련 서적으로는 ‘기문둔갑부응경’, ‘둔갑연의’, ‘기문둔갑점험’, ‘홍연진결’ 등이 있다.

 

 

다음은 수봉 이기목 선생의 설명이다.

奇學은 爲政者에게는 治政의 美學이요.

軍略家에게는 用兵의 武經이며 企業人에게는 經營의 指針書요.

一般 大衆에 있어서는 生活의 反射鏡이라 할 수 있겠다.

 

卽 天時年局으로서 天의 기미를 포착하여 국정의 향방을 설정할 수가 있어 위정자에겐 정치의 미학이 될 수가 있겠고. 승전부(奇門戰法)로서 전승의 기선을 잡을 수가 있겠기에 군략가에겐 용병의 武經이 될 수가 있으며 또한 물가의 평단법으로 시세의 高歇(고헐)을 예측할 수가 있으니 기업인에게는 경영의 지침서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요. 年月日時에 該載定(해재정)이라 하여 人命의 부귀빈천과 길흉화복을 주지케 해주므로. 뭇 사람들에게는 생활의 반사경이 될 수가 있겠다.

 

奇門이 무엇인가에 관한 해답은 어쩌면 이것으로서 족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굳이 蛇足之辯(사족지변)을 빌리자면

奇學은 後天世界의 凡諸衆生이 안고 있는 煩惱(번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된

延命之術(연명지술)이라 할 수 있겠다.

 

[先天은 無爲之道요. 後天 有爲之術이라] 하여

先天의 世界는 無爲自然의 世界로서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일체의 인위적 제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곳이다.

따라서 先天의 世界에서는 眞人과 道通君子[仙官(선관)]들만이 사는 곳이라

衆生이 사는 사바세계와는 달라서 一切의 규범이 필요치가 않지만

그러나 호랑이도 새끼를 많이 낳으면 시라소니가 나온다는 말과 같이

先天世界에서도 人口數가 점점 불어나게 되어 그때부터는 無爲自然의 道만으로는 다스려 나갈 수가 없게 되었고 또 天地의 度數도 先天運에서 後天開闢運이 到來한지라 無位는 有爲로 變하고 道는 規範으로 바뀌게 되니 知人과 達人의 世界가 衆生의 世界로 轉落하게 됨에 따라 衆生의 百八煩惱(백팔번뇌)를 治癒(치유)할 방도가 없어 마침내 有爲之術(유위지술)로서 後天 延命之策(연명지책)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름하여 奇門定命學이다.

 

일찍이 紫府眞人(자부진인)[檀君王朝(단군왕조)의 後孫(후손)] 께서는 太白仙園(태백선원)의 三淸宮(삼청궁)에다 共工(공공). 軒轅(헌원). 倉詰(창힐). 大撓(대효)等(등)의 門徒(문도)를 모아놓고 東邦隱書(동방은서)를 傳受(전수)하니 이는 靈生五劫之宗(영생오겁지종)이요 先天未判之時(선천미판지시)부터 있어온 紫府秘文(자부비문)으로서 곧 중생을 구제하는 유일한 後天 延命術인 것이다.

 

그후 大撓(대효)와 倉詰(창힐)에 의해 綿綿(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靑邱奇門(청구기문)의 脈은 마침내 고구려조에 이르러 樂聖(낙성) 乙巴素(을파소) 仙師(선사)께서 靑邱奇門(청구기문) 左右總坊(좌우총방) 이라는 道坊을 開設하시고 또 紫府秘文(자부비문)의 내용을 演解(연해)한 洪煙正決(홍연정결)을 編纂(편찬)하시었으니 壹千八百年 靑邱歷史(청구역사)에 길이 빛나는 師門(사문)의 正典(정전)이 곧 그것이다. (시중에 홍연진결은 이의 가본이며 홍연비결도 역시 가본이다.)

 

軒轅(헌원)은 中國奇門(중국기문)의 創始(창시)者로서 風后(풍후). 太公(태공). 黃石公(황석공). 張子房(장자방)등의 역대 中興(중흥) 道祖(도조)들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기문의 脈絡(맥락)을 있게 한 奇祖(기조)들이시다.

 

靑邱奇門(청구기문)은 八艮山에 뿌리를 둔 仙文化의 일맥으로서 백두산민족 고유의 간지문화권을 형성시킨 대표적 문화양식인 것이며 따라서 그 創學의 동기 또한 순수하여 어디까지나 심신수련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中國奇門(중국기문)은 그 創學的 동기가 자못 공리적이었으니 그 의도와 목적이 곧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방편책의 일환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로 말해서 軒轅(헌원)은 不可抗力的인 蚩尤(치우)와의 戰爭을 奇門兵法으로서 만이 勝利를 할 수가 있었다.

 

아무튼 靑邱奇門(청구기문)이든 中國奇門(중국기문)이든 間에 斯學(사학)의 궁극적인 創學目的은 上爲保國(상위보국)하고 下爲保命(하위보명)함에 있다고 하겠으므로 天時年局(천시년국)으로서 保國安民을 策하고 人事命局(인사명국)으로서는 保命(보명). 護身(호신)을 決(결)하니 이로서 斯學(사학)은 後天 延命之策으로서 國家의 危亂時(위란시)에는 保國强兵策이 되고 個人의 運路開陳을 爲해서는 避凶趨吉(피흉추길)의 護身策이 되므로 至寶的인 秘策이라 하겠다.  

 

가. 奇學의 淵源(연원)

 

흔히들 奇門遁甲의 淵源을 中國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이것은 우리 民族이 創出(창출)해낸 自生的文化圈(자생적문화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自生的文化圈이란 곧 紫府秘典(자부비전)을 말하고 紫府秘典은 또한 紫府仙師(자부선사)에 의해 纂修(찬수)된 우리겨레의 精神史인 同時에 後天衆生을 爲한 方便品으로서 神策化 해낸 것이 奇門定命學이다.

 

또한 여기에는 左右 兩坊(양방)이 있어서 左道는 學統으로서 秘奧(비오)한 理致를 통하게 했고 右道는 肉身과 精神을 하나로 묶어 修練을 하므로 서 最高의 境地에 到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左道는 그 槪要를 大略的이나마 알고 있는 이가 많지만 右道에 關해서는 大部分 모르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 같아서 조금 說明을 하자면 右道는 步法으로 이루어 졌는데 步法은 이를 俗된 말로는 縮地法이라 하지만 바르게 표현하자면 夏禹氏의 禹步法이라 한다.

 

우리나라에 옛 부터 전해오는 [뉘엿 뉘엿 걸어도 황소 걸음 ]이라는 俗談이 여기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夏禹氏의 步法이 어째서 우리의 歷史的 所産(소산)이 될 수 있느냐? 라는 疑問을 제기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疑問은 우리의 上古史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바로서 조금은 부끄러운 質問이라 할 수 있겠다.

 

其實(기실) 支那族(지나족)들이 자기네 祖上(조상)이라 우기는 三皇(삼황) 五帝(오제)가 宗族(종족)상으로는 모두가 우리의 傍系祖上(방계조상) 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에 對한 疑問點은 자연 解消되리라 여겨진다. 그러므로 夏禹氏의 步法은 그 由來가 곧 우리의 精神文化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禹步法(우보법)이 修鍊過程으로 채택이 되어 距今(거금) 二千年의 歷史를 通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나. 創始者(창시자)

 

紫府仙師께서 三淸宮(삼청궁)에다 傳授의 殿堂을 마련하시고 이에 네 사람의 弟子를 길러 내셨으니 곧 共工(공공). 大撓(대요). 軒軒(헌헌). 倉詰(창힐) 等이시다. 그러나 우리의 奇學을 가리켜 그 創始者를 말하라면 以上에서 指摘한 네 사람의 人物가운데 直接的인 傳脈者(전맥자)는 없다. 그러나 奇門(기문)은 亦是 紫府仙師 時代에 分明 創製(창제) 되었으니 盤固天皇(반고천황)이 그 嚆矢(효시)라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盤固天皇은 分明히 右道 創始의 嚆矢는 될 수 있어도 左道 創製의 紀元(기원)은 樹立(수립)하지 못했다. 盤固天皇이 桓因(환인) 天帝(천제)로부터 統治權域(통치권역)을 分轄(분할) 받고서 세 사람의 追從者와함께 六丁 六甲 神將(신장)을 거느리고 奇術(기술)을 부리면서 三危山(삼위산)으로 들어갔다. 以上은 桓檀古記(환단고기)에 收錄(수록)된 盤固天皇(반고천황)에 關한 記錄이다.

 

여기서 우리가 집고 넘어가야 할 點(점)은

[ 六丁六甲을 거느리고 奇術을 부리면서 三危山으로 들어갔다.] 라고 한 記錄의 部分에 關해서다.

 

干支文字는 本是 祭儀文字(제의문자)로 制定된 것이다.

 

祭儀文字(제의문자)란?

 

告(고) 天祭(천제)의 儀式(의식)을 擧行(거행)할 적에 天神(천신)의 啓示를 받아 記錄하는 형이상학적인 文字(문자)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神과 人間과의 대화를 소통 시켜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문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六丁 六甲의 干支文字는 모두가 神將인 故로 盤固(반고)가 부렸다는 奇術은 분명히 右道의 수련에서 얻어진 고도의 둔갑술과 藏身法을 일컫는 말인 것이다. 또한 盤固天皇은 六丁 六甲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초인적인 靈力을 지닌 분이며. 또한 奇術이라는 말의 뜻은 곧 奇門遁甲術을 말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右道 수련에 통달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다.

 

혹자는 奇術이라는 말의 뜻을 奇異한 술법쯤으로만 해석하는 예도 있지만 그러나 기술이 분명한 기문둔갑술이라는 사실은 六丁 六甲 神將 이라는 말로서 充分한 뒷받침이 되리라 믿는다. 또 六丁 六甲 神將을 거느리고 奇術을 부리면서 三危山(삼위산)으로 갔다는 그 奇術은 기문둔갑술이 아니고는 달리 해석이 되질 않는다.

 

이를 더욱 확실히 증명해 줄 수가 있는 典考(전고)가 있다. 그것은 [중국인의 神話(신화)]라는 책에서 遁甲의 化身으로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盤固의 관한 이야기로서 그곳에서도 盤固가 遁甲의 과정을 거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볼 수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후가 오래 동안 귓병을 알아 왔는데 마침내 하루는 귀속에서 황김색갈의 귀여운 누에가 나왔다. 그런데 이 황김 누에가 차차 자라나더니 급기야 황김 강아지로 변하고 이 황김의 강아지는 차차 자라서 적장의 목을 따오는 큰 공을 세우고 나서 다시금 인신 犬首의 半 人間이 되는 둔갑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支那人(지나인)들이 무어라 하든 상관없이 上古時代에 우리 겨례의 傍系(방계) 조상임에는 틀림이 없다.

 

左道坊(좌도방)의 창시는 三淸宮의 넷 제자중 大撓(대요)에 依해 學統의 體系가 완성 되었고. 그 뒤 고구려 九代 故國川王朝(고국천왕조)(在位179-197)에 재상을 지낸 乙巴素(을파소)선사께서 [靑邱奇門 左右 叢方] 이라는 門派를 창설하셨고 뒤이어 부설 교육기관으로서는 [太淸宮 靑邱 太學堂]을 세워 俊才를 불러 모아 心身을 수련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곧 本坊의 創立 유래인 동시에 또 연원사다. 기실 盤固天皇(반고천황)이 右道奇門의 창시자라고 는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沿革상의 기록일 뿐이고. 斯學(사학)의 淵源史(연원사)와 련결을 지어서 얘기하기는 조금 미흡한 감이 있다.

 

그러므로 斯學(사학)의 淵源(연원)은 乙巴素(을파소) 선사께서 실제로 문파를 창설하신 그 년도부터 시원으로 起算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고 또한 본방의 創門 연대를 기록적으로 밝히자면 고국천왕이 아직 재위중이던 시기를 소급해서 紀元 190 年代 부터 起算을 한다면 적어도 1800년 以上의 긴긴 력사가 곧 斯門(사문)의 淵源史(연원사)임을 알 수가 있겠다. 그러나 나라가 몰락됨에 따라 本坊의 命運도 비탈길을 걷기 始作하여 끝내는 그 本據地를 떠나서 심산궁곡 명산의 九支洞府를 찾아 전전하면서 綿綿若存 그 잔맥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기문둔갑은 전쟁 병법서이다.

 

동양철학은 합리(合理)적이고 근원(根原)적이며 과학성(科學性)을 갖춘 학문으로 특성은 자연(自然)과 인간(人間)의 (天 地 人 三才 有機體) 조화로움을 추구하여 시작되고 끝이 시작이 된다.

 

인류사에 있어서 서양의 문명의 한계점에 봉착한 시점에, 先人들의 지혜로움의 보고라 할 수 있는 기문둔갑(奇門遁甲)은 고대로부터 전수된 (周易과 陰陽五行學중에서 구궁(九宮)을 통해 가장 합리적이며 보편타당(普遍妥當)한 과학성을 갖추었다.

 

기문둔갑이라 하면 중국의 煙局奇門을 말하는 것이며, 한국에서 배우는 洪局奇門과 다르다는 점을 미리 말하고자 한다.

 

기문둔갑이란 음양의 변화에 따라 몸을 숨기고 길흉을 택하는 용병술(用兵術)로서 병법 술수의 하나이다. 하도(河圖:주역 팔괘의 근본이 되는 55개점의 점)·낙서(洛書:중국 우왕 때 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있었던 9개의 무늬)의 수(數) 배열원리 및 이를 이용한 주역 건착도(乾鑿度)의 구궁(九宮)의 법이 그 원형으로 둔갑술(遁甲術)이라고도 한다.

 

奇乙壬 三式이라 하여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인사육임(人事六壬)으로 전 우주(全宇宙)의 시공간(時空間)개념을 한 이치(理致)로 꿰뚫어 보는 것이다. 『한단고기』에 의하면 일찍이 신시시대(神市時代)에 우사(雨師)인 복희(伏羲)가 한역(桓易)을 만들고, 선인(仙人) 발귀리(發貴理)의 후손인 자부선생(紫府先生)이 신명득도(神明得道)하여 오행의 수리(數理)로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그려 칠성력(七星曆)을 시작하여 둔갑기문이 시작되었다.

 

『포박자』에 의하면 황제헌원(黃帝軒轅)이 동쪽으로 청구(靑邱)에 이르러 풍산(風山)을 지나 자부선생을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온갖 만가지 신(神)을 불러 부렸다고 기록이 있으니, 상고의 신시시대이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에 의하면 헌원황제(軒轅黃帝)가 탁록(탁鹿)에서 치우천왕(蚩尤天王)과의 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꿈에 천신(天神)에게서 부결(符訣)을 받았고, 이를 풍후(風后)가 명을 받아 문자로 완성한 것이 둔갑기문의 시작이라 하고있다. 이후 강태공(姜太公), 제갈공명(諸葛孔明), 장량(張良), 이정(李靖), 유백온(劉伯溫) 등이 삼식(三式)에 능통하여 국기(國基)를 견고히 하는 데 이바지 하였다.

 

주(周)나라 때에 태공(太公)이 『음부경』의 주를 지어 자부삼황(紫府三皇)의 뜻을 조술(祖述)하였으며, 병법(兵法)을 알아 기문(奇門)을 선포하여 72 活局을 세우고 군사(軍師)가 되어 주무왕(周武王)이 상(商)을 칠 수 있도록 도왔다. 진(秦)이 망하고 한(漢)이 일어날 시기에 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으로부터 삼략(三略)을 전수받아 기문(奇門)을 정립하여 한(漢) 고조(高祖) 유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어 한나라 개국공신이 되었고, 삼국시대에는 제갈공명(諸葛孔明)이 병법(兵法)에 이용하여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당(唐) 태종 때 이정(李靖)이 기문둔갑을 병법과 정치에 활용하여 당나라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면서 기문둔갑은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금서(禁書)로 정해지고, 이후로 궁중 깊숙이 감추어 두고 제왕들만 활용하게 된다.(제왕들이 천하를 평정하고 난 이후 기문 술사들이 가장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어 최우선적으로 제거되었다.)

 

기문둔갑의 심오한 이치는 정치와 전쟁에 활용되어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면서 한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東國奇門이란 한국에서 발달된 洪局奇門을 말하며, 중국의 煙局奇門에 洪局數를 더하고, 日家八門. 太乙九星. 生氣福德을 더 첨가하여 奇門으로 보는 각개인의 사주라 할 수 있고 사실은 병법서와는 좀 다른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으로 병법에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고, 연국과 홍국에 능통하면 따로 따로 사용하지 않고 단 하나의 과전으로 사주와 병법을 다 볼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

東國奇門에서 紫府禪師(자부선사), 乙巴素(을파소), 乙支文德(을지문덕), 金巖(김암), 薛秀眞(설수진), 玉龍子(옥룡자=도선국사), 姜邯贊(강감찬), 조선조에는 무학대사, 정도전, 徐花潭(서화담), 李土亭(이토정), 李滉(이 황), 李栗谷(이율곡), 등이 활용했다.

 

태을(太乙)은 (천문관측 이론) 기문(奇門)은 (지리상 이치) 육임(六壬)은 인사(人事)를 다룬다. 전쟁에서 출병(出兵)여부를 판단과 동(動)과 정(靜)을 결정하고 또 장수(將帥)를 기용하는 일과 병사를 움직이는 일과 같은 시시각각 변화와 길흉(吉凶)을 판별하고 주객동정(主客動靜)을 따져 신중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천하가 혼란하였을 적에는 갑자(甲子)를 지어 천지(天地)의 수(數)를 주관하였다. 둔갑(遁甲)으로 펼치니 그 법(法)은 그윽하고 깊으며 비밀스러웠다. 육갑의(六甲儀)로써 직부(直符)가 되고 이십사기(二十四氣)로써 식국(式局)이 되어 육무지하(六戊之下)에 귀신(貴神)이 머무를 바가 있으며, 건 곤 감 이 진 손 간 태(乾 坤 坎 離 震 巽 艮 兌)의 팔괘(八卦)로써 통괄한다.

 

일절이기(一節二氣)로 나뉘어 팔절(八節)은 각기 주괘(主卦)에서 일어나니, 동지(冬至)후 양둔순수(陽遁順數)가 되어 일(一)로부터 구(九)에 이르고 하지(夏至)후 음둔역수(陰遁逆數)가 되어 구(九)로부터 일(一)에 이르러 동지(冬至)후 육의(六儀)는 순포(順布)하고 삼기(三奇)는 역포(逆布)하며, 하지(夏至)후 삼기(三奇)는 순포(順布)하고 육의(六儀)는 역포(逆布)하니 육의(六儀)는 즉 육갑(六甲)이라고 말하고 삼기(三奇)는 을(乙) 병(丙) 정(丁)이다.

 

육갑(六甲)이 직부직사(直符直事)가 되는 것처럼 을(乙)은 일기(日奇)가 되고 병(丙)은 월기(月奇)가 되고 정(丁)은 성기(星奇)가 되며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는 의(儀)가 된다. 항상 직사(直事)로써 시궁(時宮)에 가(加)하면 개(開) 휴(休) 생(生) 삼문(三門)이 임(臨)하는 곳을 안다. 또한 직부(直符)로써 시(時)에 가(加)하면 천상(天上)에 삼기(三奇)는 개(開) 휴(休) 생(生) 삼문(三門)과 합(合)이 되어 길(吉)하고 불리(不利)함이 없다.

 

천(天)에는 구성(九星)이 있고, 구궁(九宮)을 진(鎭)함으로써 지(地)에는 구주(九州)가 있고, 구토(九土)에 응(應)함으로써 모든 낙구(洛龜)를 취하니 戴(머리)九, 履(발)一, 左(좌)三, 右(우)七, 二 四肩(어깨), 六 八足(다리)이 되고 오(五)는 중궁(中宮)의 의(儀)에 거(居)한다. 이 둔갑법(遁甲法)은 지나침이 없어서 천(天)의 일시(日時)를 타고 지(地)의 방향(方向)을 택(擇)하여 사람을 부리면 모든 추길피흉(趨吉避凶)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