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외고 전교 1등 왕정민(2년)양 입에선 연신 ‘이건 좋고, 이건 재밌고, 이건 자신있다’는 말이 쏟아졌다. 머리 좋은 우등생 특유의 자신감이냐고 물었더니, “저 아이큐 별로 안 높아요. 싫어하는 걸 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순 없잖아요. 성적 올리려면 먼저 공부를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해요”란 명답이 나왔다.
기숙사 자습실의 정민이 책상 위엔 친구들보다 교재가 훨씬 적었다. 교재 안에는 잡다한 필기 없이 핵심 내용만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단촐한 책상에 숨은 공부법을 찾아봤다.
○ 하루 일과
평일
6시30분 기상
6시30분~7시20분 등교 준비, 전원 퇴소
7시20분~7시40분 자습실에서 아침식사(빵·우유) 등 자유시간(복습)
7시50분~11시50분 등교 후 오전 수업
11시50분~12시50분 점심시간(방송반 엔지니어라 점심 방송 돕는 등 동아리 모임 후 식사)
13시~15시50분 오후 수업
16시20분 청소 및 종례
16시20분~17시30분 자습(동아리 활동이나 공연 연습으로 자습 빠질 때 많음)
17시40분~18시30분 저녁 식사(기숙사가 열리기 때문에 식사 후 샤워하고 옷 갈아입기 등)
18시30분~21시 야간 자습
21시~21시30분 간식
21시30분~23시30분 야간 자습
24시~24시30분 저녁 점호
익일 1시 가방 정리 후 취침
주말, 공휴일
8시 기상
8~10시 씻고 아침식사, 외출 준비
10~12시 필라테스
12시20분~13시 집 도착. 씻고 휴식
13~14시 점심식사
14~20시 자습(수학 문제 풀이나 신문 스크랩 등 학교 수행평가, 피아노 연습 등)
20~23시 저녁 식사 후 가족과 영화 감상을 하거나 쇼핑 등
23시 집 도착 후 씻고 휴식
24시 취침
책상 위 교재
국어: 학교 자체 교재, EBS N제(EBS) 영어: 학교 자체 교재, 씨뮬(골드교육), 어휘끝(쎄듀) 수학: 개념유형(비상교육) 3권, 수학의 정석(성지출판), 수학의 바이블(이투스)
정민이는 스스로 “공부량이 적고 속도는 더디다”고 평했다. 시험 기간에 보면 정민이는 한 과목도 제대로 안 끝냈는데 다른 친구들은 “아직 한 과목이 더 남았다”고 걱정하는 일이 시험 때마다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어를 한번 예로 들어 보자.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영어 지문이 60개라면 대부분의 학생은 1번부터 60번 지문까지 전체적으로 두세 번 훑어보며 독해하고 모르는 단어를 암기한다. 정민이는 다르다. 1번 지문을 읽기 시작하면 내용 파악, 단어와 문법 확인, 단락 구성 요소, 주제문 위치까지 철두철미하게 분석한다. 읽고 고민하고 다시 읽기를 20번 이상 반복한다. 이런 식으로 한번 공부를 마치면 시험 전까지 다시 들춰보지 않는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한 단원 공부를 시작하면 목차만 보고도 관련 내용을 막힘없이 줄줄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셀프 테스트를 한다. 키워드와 숫자만 적어놓고 빠짐없이 전부 이해하고 암기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사라면 일제강점기 관련 단원을 공부하면서 노트에 ‘통치방식’이라고 적고 바로 옆에 숫자 3만 표시한다. 공부를 마친 뒤 이 단어와 숫자만 보고 전체 내용을 떠올려보는 식이다. 못 외운 부분이 있으면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다시 공부한 뒤 셀프 테스트를 또 거친다. 이를 통과해야 비로소 다음 단원을 펼친다.
이렇게 물샐틈 없이 공부하는데 정민이가 스스로 공부량이 적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정민이는 “보는 교재 수가 친구들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문제집을 거의 풀지 않는다. 내신 시험을 앞두고서도 과목별로 주 교재 하나만 본다. 담당 교사가 교과서로 수업하면 교과서만 보고, 프린트물로 수업하면 프린트물만 본다는 얘기다. 이유가 있다.
“내신 시험은 학교 선생님이 출제하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다룬 내용이 곧 족집게 교재”라는 설명이다. 정민이는 “가끔 친구들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문제를 들고 와서 물어볼 때가 있다”며 “이런 내용은 수업 시간에 다룬 적이 없어 시험에 나올 리가 만무한데 그 문제 푸느라 고민하는 게 내 눈엔 시간낭비로 비춰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 교재 한 권에 집중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문제집을 통해 다양한 문제 유형에 익숙해지는 게 효과적인 공부법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수업 교재 한 권만 보고 전교 1등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걸까. 정민이는 “주 교재라는 건 그 안에 교과서 주요 내용과 수업 시간에 한 모든 필기,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은 참고할 만한 내용까지 한 권에 모두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말이 한 권이지 수업 교재의 주요 맥락을 기준 삼아 ‘나만의 교재’로 탈바꿈시켰다는 얘기다. 정민이는 “핵심 내용을 모두 한 권에 옮겨 놓지 않으면 시험 기간에 이것저것 찾아 공부할 게 너무 많아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런 ‘나만의 교재’ 전략은 공부 고수들이 많이 하는, 널리 알려진 학습법이다. 하지만 정작 따라하려고 해도 어떤 내용을 정리해야 할지 몰라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정민이는 “수업 시간에 쓰는 교재 내용과 수업 시간 선생님의 설명을 기준으로 삼은 뒤 그 내용에 심화·보충할 내용을 옮겨 적으면 쉽다”고 노하우를 설명했다.
교재 하나에 모든 내용을 옮겨 적었다고 하니 책 안에는 빈틈없이 필기가 빼곡히 돼 있을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정민이 교재를 펼쳐보면 이런 기대와 달리 다소 휑한 편이다. 필기 분량이 적은 데다, 다양한 색깔 펜으로 알록달록 정리한 여느 여학생들과 달리 검정색 볼펜으로 주로 정리하고 형광펜은 두가지 색만 사용해 중요한 내용을 간간히 표시해놓은 게 전부다. 정민이는 “가끔 친구들이 내 교재 빌려갔다가 돌려주면서 ‘너 왜 필기 안했냐’고 물을 때가 많다”며 웃었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정민이의 필기 분량이 적은 건 예습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수업 전 교재를 미리 보고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을 표시한 뒤, 교사가 그 부분을 설명할 때만 필기에 집중하는 거다.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라도 교사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거나 또다른 해법을 알려주면 그건 적는다. 정민이는 “필기는 받아쓰기가 아니다”며 “수업을 들으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만 간추려서 적는다”고 했다.
국어나 영어, 사회는 정민이의 ‘한 권만 통달’식 공부법으로 고득점을 받은 게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수학 과목에서도 이같은 공부법이 통할까. 정민이는 “수학 역시 교재나 문제집을 여러 권 푸는 것보다, 같은 교재를 여러 번 푸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민이는 수학 교재가 세 권 있는데, 각기 다른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은 거다.
한 권은 예습 겸 주 교재로 쓴다. 정민이는 수업 전에 문제를 미리 다 풀어보는 게 원칙이라 예습용 교재가 꼭 필요하다. 수업 시간에도 이 교재를 사용한다. 교사가 모든 문제를 다 풀어주지 않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다룬 문제는 따로 형광펜으로 표시하고, 예습할 때와 다른 풀이법이 나오면 추가로 필기해 이걸 주 교재를 삼는다.
다른 두 권은 반복 풀이용이다. 문제를 풀다 막히거나 교사가 알려준 새로운 해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해답지 대신 주 교재를 다시 펼쳐본다. 정민이는 “선생님이 강조한 문제에는 중요한 수학적 개념이 녹아 있는 것”이라며 “이런 좋은 문제를 표시해놓고 반복해 풀다보면 다른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고 말했다. 굳이 문제집을 여러 권 바꿔가며 중요하지 않는 문제에 매달리느니, 핵심 문제를 통달하는 게 수학에서도 효과적인 학습법이란 주장이다.
정민이는 “평소 꼭 알려주고 싶었던 공부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공부가 힘들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는 “후배들 공부를 도와주다보면 ‘이 과목은 이래서 어렵고 저 과목은 저래서 싫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많다”며 “어차피 해야 하는 공부니까 일부러라도 ‘이건 좋고, 저건 재밌다’는 식으로 마음가짐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노트 정리에만 온통 시간을 뺏기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영어 지문을 공부한다며 본문 내용을 노트에 다 옮겨 적거나, 시험이 닥쳤을 때 ‘나만의 교재를 만들겠다’며 필기 내용을 그제서야 옮기는 건 바람직한 공부법이 아니란 얘기다. 그는 “정리 자체가 공부가 될 순 없다”며 “수업 시간에 교재에 바로바로 정리하고 평소 자습 시간에 미리 예습과 복습을 한 내용을 표시해 놓는 걸 거르지 않아야 시험 기간에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대 우선선발 합격자의 수능공부법
서울대 우선선발] 용인외고3 이하영
‘개념먼저, 문제풀이는 다음’
[베리타스알파 = 김대식 기자] 서울대 수시에서 면접 없이 자기소개서만으로 우선선발 합격한 용인외고 3학년 이하영(19)양은 전국단위 자사고에서 받기 어려운 1점 후반 대의 내신을 기록했다. 수능에서도 국어 1개, 영어 2개를 틀렸을 뿐이다. 학습 비결 역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개념에 충실하자’.
“문제 풀이량이 많지 않았다. 문제집은 EBS와 기출문제, 내신교재뿐이었다. 1학년 때 수학을 4등급을 받을 정도로 못했다. 공부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내신시험 때면 시험범위에 해당하는 문제집을 5~6권을 풀었다. 문제풀이로 올릴 수 있는 성적은 3등급이 한계였다. 개념정리 없이 문제만 풀면 스킬이 느는데, 스킬이 적용되는 문제는 풀리지만 그 이상은 풀리지 않는다. 고난도 문제가 나오면 개념이 잡히지 못해 손도 대지 못했다.
고2부터 필기를 정리하고 문제를 풀면서 재미도 느끼게 됐고 성적도 올랐다. 두꺼운 노트를 구입해 단원을 분류하고 여러 수학 선생님들의 필기를 한 권에 합쳐 개념노트화해 공부했다. 두 시간 개념 공부를 하고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3학년 들어서는 기출문제만 풀었다. 너무 많이 풀어 나중에는 답을 외울 정도였다.
사회탐구도 마찬가지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을 귀담아 듣고 필기를 꼼꼼하게 했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수적인 내용이든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연결고리를 찾아가다 보면 외우는 게 아니라 하나를 통해 나머지가 따라오는 내용이 많았다. 제2외국어 단어처럼 암기 요소가 있지만 사탐에는 암기과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용과 내용 사이의 연결고리를 낱낱이 공부하다 보니 암기대신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재미있는 공부의 밑바탕이 됐다.”
[대한민국 0.1%] 서울대 수시 우선선발 재료공학부 안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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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서울 목동 양정고 2학년 강경민군
나만의 교재 만들기 등 독특한 공부법
남 따라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걸 찾아
믿고 지켜봐 준 부모도 1등의 숨은 공신
“아이 갓 어 보이(I got a boy) 멋진 아이 갓 어 보이 착한 아이 갓 어 보이 핸섬 보이 내 맘 다 가져간~.” 자율형사립고인 양정고 전교 1등을 만나러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귀에 익숙한 소녀시대 노래가 흘러나온다. “세포의 생명 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소화계·순환계·호흡계·배설계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람 목소리도 함께 들린다.
강군 공부법은 크게 세 가지다. 자기만의 교재 만들기와 음악 들으며 공부하기,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말하며 암기하기다. 다시 말해 오감(五感) 활용법이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나만의 교재 만들기가 핵심이다. 교과서 기본 개념과 수업 중 교사의 부연 설명, 자습서 핵심 정리, 문제집 심화 내용까지 공책 한 권에 다 담는 거다.
방에 번듯한 책상이 있는데도 방바닥에 주저앉아 공부하는 건 책 4~5권을 동시에 넓게 쫙 펼쳐 놓기 위해서다. 강군은 “시중에 파는 어떤 교재보다 훌륭하다”며 “그날 수업 내용을 바로 정리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복습도 된다”고 말했다.
시험 전에는 따로 교재 등을 볼 필요없이 이렇게 정리한 공책 한 권만 보면 된다. 그는 “초반에는 공책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적느라 시간만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중요 내용을 파악해 요약하는 기술도 생겼다”고 설명했다. 책상에서 공부하는 건 수학문제 풀 때뿐이다.
강의하듯 공부하기 시작한 건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원래 손으로 쓰면서 암기했는데, 여러 번 반복해도 머릿속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시도한 게 소리 내 말하며 외우는 거다. 막상 해보니 쓰는 것보다 시간은 적게 걸리고 기억엔 오래 남았다.
맨 처음에는 눈으로 읽으며 중요 내용에 밑줄 치고, 그 다음엔 입으로 중얼거리며 외운 후, 머릿속에 내용이 어느 정도 저장됐다고 판단하면 다른 사람에게 강의하듯 설명한다. 강군은 “암기한 내용을 청산유수(靑山流水)로 말하지 못하고 멈칫거리면 제대로 외우지 못한 것”이라며 “암기하는 동시에 스스로 실력을 점검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말했다.
가요를 들으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다. 남들은 조용해야 공부가 잘된다는데 강군은 고요하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졌다. 시계 초침 소리 등 외부의 작은 소음에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음악을 틀었는데 놀라울 정도 문제 풀이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후 공부할 때는 늘 음악을 듣는다. 그는 “여러 경험을 통해 나에게 딱 맞는 공부법을 찾아야 한다”며 “아무리 여러 사람이 ‘안 좋다’고 해도 자신에게 맞을 수도 있고, 거꾸로 모두가 ‘효과 있다’고 해도 별 도움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요를 듣는다지만 일단 공부하기 시작하면 무슨 노래가 흘러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집중한다. 심지어 휴대폰 울리는 소리도 못 들을 정도다. 엄마 김혜라(51)씨가 묻는 말에 대답까지 하고는 나중에 딴 소리 할 때도 많다. 예컨대 ‘시장 갔다 오겠다’는 엄마 말에 ‘알았다’고 멀쩡히 대답하고선 한참 후에 ‘어디 갔냐’고 전화하는 식이다. 그만큼 몰입하는 거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수업 시간 교사 말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다. 학교 수업을 나 혼자만을 위한 수업이라고 마인드 컨트롤하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비결이란다. 그는 “교실에 교사와 나만 있다고 생각하면 한 순간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다”며 “졸 수 없는 것은 물론 교사 질문에 대답을 꼬박꼬박 잘하는 등 수업태도도 자연스레 좋아진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인 평일 오전 8시~오후 4시엔 이렇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많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녹초가 된다. 집에 돌아와 반드시 2시간 동안 낮잠 자며 체력을 회복한다. 사실 중학교 때는 귀가하자마자 바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곧 비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았다. 공부하는 내내 졸리고 피곤해 30분이면 끝낼 공부를 2시간 넘게 한다는 걸 발견하고는 꼭 2시간씩 낮잠을 잔다.
이외에도 유난히 휴식 시간이 많다. 강군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것보다 틈틈이 쉬는 게 집중력을 높이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며 “머리가 쉬어야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2~3번은 친구랑 노래방을 가거나 영화를 본다. 또 스마트폰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거나 웹툰도 즐겨 본다.
휴식 시간이 많다고 느슨하게 사는 건 결코 아니다. 자기 관리는 철저하다. “5분만 쉬겠다”고 맘 먹으면 정말 딱 5분만 쉬고, “1시간만 TV를 보겠다”고 하면 정말 1시간만 본다. 혹시라도 긴장을 놓칠까봐 마음 먹는 순간 실시간으로 엄마에게 말한다. 자기 방에서 혼자 쉴 때도 엄마에게 “5분 쉬겠다”고 말하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이제 공부하겠다”고 얘기한다.
이렇게 혼자 척척 잘 알아서 하기는 하지만 강군의 우수한 성적에는 부모 역할도 컸다. 엄마는 무엇보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공부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동안 한 번도 이래라 저래라 하며 강요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전교 20~30등이던 강군이 고등학교에 올라와 1등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엄마가 기다려주는 사이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아이가 알 수 없는 행동을 할 땐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기보다 ‘왜 그럴까’를 먼저 생각했다”고 했다.
비결은 또 있다.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엄마 김씨는 강군이 중3 때까지 미술교사로 일했다. 바쁜 워킹맘이었지만 학업에서 한번도 손을 놓지 않았다. 강군 여섯살 때 사회복지대학원에 들어갔고, 이후 미술심리치료 공부를 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모범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강군 위로는 두 살 터울 형이 하나 있다. 김씨는 “엄마는 TV 보면서 아이한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누가 말을 듣겠느냐”며 “부모가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책상 앞에 앉는다”고 말했다.
또 작은 일이라도 칭찬하는 걸 잊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키가 작았던 강군은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몇 번이 될까’를 걱정했다. 3월 2일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올해는 2번”이라고 좋아하면 김씨는 손뼉을 치며 “기특하다”고 칭찬했다. 1번이나 2번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아이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획 세운 걸 지키거나 방 청소를 잘해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김씨는 “학교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본 결과 모든 아이들은 한번쯤 방황한다”며 “부모가 충분히 사랑하고 믿어주면 엇나갔던 아이도 제자리에 돌아온다”고 말했다. 이런 믿음이 전교 1등 아들을 만든 셈이다.
[전교 1등의 책상] 서울 압구정고 3학년 조성환군
전교 세 자리 등수에서 전교 1등으로
학원 전전했을 땐 성적 안 올라
수업 집중하고 쉬는 시간 복습하니 성적↑
"진짜 내 것이 될 때까지 무한 반복"
파란만장(波瀾萬丈). 파도 높이가 만장(萬丈·아주 높음)이라는 뜻으로 부침이 심할 때를 비유하는 말이다. 압구정고 3학년 조성환군의 짧은 공부 인생이 그렇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 전역에서 상위 1%에 드는 영재였고, 초6 때 한국으로 돌아와 전국의 우수생이 모인다는 청심국제중에 합격했다.
‘띵동땡동~.’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고 교사가 교실 밖으로 나가면 압구정고 3학년 4반은 금세 왁자지껄해진다. 학생 대부분 휴대전화를 꺼내 게임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접속하기 바쁠 때 꿋꿋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 있다.
귀에 귀마개를 꽂은 채 교과서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조성환군이다. 중학교 졸업할 때 전교에서 상위 26%였던 그는 고1 1학기 때 전교 3등, 2학기 전교 2등으로 등수가 오르더니 고2 이후론 계속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있다.
뛰어난 성적을 받는 비결 중 하나가 수업 직후 복습이다. 특히 국어·영어·수학·사회는 쉬는 시간에 반드시 수업 내용을 다시 훑어본다. 쉬는 시간은 불과 10분이라지만 다음 수업 선생님이 교실에 오기까지 이동시간을 합하면 15분이 생긴단다. 그는 “전 시간 수업 내용을 정리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라며 “미리 조금씩 해 두면 내신 시험 공부할 때 이해나 암기가 훨씬 잘된다”고 말했다.
조군의 학습 비결은 이렇게 특별하지 않다.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쉬는 시간에 바로 복습하고, 모르는 건 알 때까지 보고 또 보는 거다. 모범생이라면 대부분 하는 방법이지만, 그는 조금 더 철저히 지킨다.
조군은 “수업 집중도와 성적은 정확히 비례한다”며 “특히 내신 시험은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에서 벗어난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중학교 때 학교 수업을 집중해 듣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도 주말에 학원을 전전하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학교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학원을 아무리 많이 다녀봤자 좋은 성적이 나올 리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달라졌다. 주요 과목은 물론, 한문이나 제2외국어 수업에서도 단 한 번도 졸은 적이 없다. 한두 번 졸기 시작하면 버릇이 될까봐 두려워서다.
조군의 공부 비법은 또 있다. 아는 것도 다시 보기다. 많은 학생이 수학을 공부할 때 오답노트를 만들어 틀린 문제만 정리하지만, 그는 맞은 문제도 다시 푼다. 확실하게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조군은 “맞았던 문제를 다시 풀었을 때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반복 학습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체 흐름을 파악한 뒤 처음 보는 내용이 나오면 다른 사람에게 술술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 보고 또 본다. 처음에는 연필로, 그 다음에는 노란색 형광펜과 분홍색 형광펜으로 색깔을 바꿔가며 표시한다. 시험 전에는 여러 번 표시가 된 단어나 내용만 집중해서 암기한다. 그는 “수업을 듣거나 교과서를 볼 때는 이해한 줄 알지만, 막상 문제를 보면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머릿속에 지식이 얼마나 쌓이는 지 계속 체크하면서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3이 된 후에 학원을 전부 그만둔 것도 같은 이유다. 중학교 때는 물론 고1 때까지 급한 마음에 국어·영어·수학·사회·논술 등 과목별로 학원을 다녔지만,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학원에서 분명히 배운 내용인데, 시험에 나오니 풀 수가 없더라”며 “내가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남의 수업만 듣는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1 겨울방학에 사회·영어·논술, 고2 1학기 때 국어, 고2 겨울방학에 수학 학원을 차례로 그만뒀다. 현재 사회탐구 과목만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 그는 “학원 가느라 시간 뺏길 일도 없고, 모르는 내용을 꼼꼼히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관리 능력을 기른 게 도움이 됐다. 고3이 된 후에는 수능에 맞춰 컨디션 관리를 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매일 아침 오전 5시40분에 일어나기다. 수능 국어 시험 시작 시간인 오전 8시40분보다 딱 3시간 전이다.
조군은 “아침에 일어난 뒤 3시간 후에 머리가 가장 맑더라”며 “학교에 가장 먼저 등교해 국어 공부를 하는 것도 비슷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얘기를 들어서”라고 말했다. 공부를 전략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성환군 사회 교과서. 맨처음 모르는 부분에는 연필, 두 번째는 노란색 형광펜, 세 번째는 분홍색 형광펜으로 표시한다. 아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시험 직전 공부할 때 도움이 된다.
그의 책상은 이런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조군이 집에서 사용하는 책상은 모두 3종류. 방에는 일반 책상과 독서실 책상이 있고, 서재에 컴퓨터 책상이 하나 더 있다. 수학문제를 풀거나 암기과목을 할 때는 독서실 책상을 이용하고, 개념 이해가 필요한 건 일반 책상에서 한다.
또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는 서재에 있는 컴퓨터 책상을 이용한다. 컴퓨터 게임의 유혹에 빠질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하는 거다. 또 공부 시작 전에는 반드시 책상을 깨끗이 치운다.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도 전교 1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어렵게 들어간 청심국제중에서 그가 한 일은 딱 두 가지, 게임과 축구였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밤에는 기숙사에서 게임을 했다. 밤새 게임하고 수업 중에 잔 적도 있다. 스타크래프트·메이플스토리·서든어택 등 게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그는 “기숙사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20등이었던 그의 성적은 중2 때 전교 80등 밖으로 떨어졌다. 중2 말 성적표를 보자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 김수련(59)씨에게 “이러다 대학에 못갈 것 같다”며 “전학 가겠다”고 말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옮기기가 아까웠던 김씨는 “고민을 좀더 해보자”고 했지만, 조군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김씨는 10일 후 전학 수속을 밟았다.
기대를 안고 신반포중으로 옮겼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국제중에서는 친구와 교사 눈치라도 봤지만, 일반중에서는 그마저도 없었다. 학교 끝나고 학원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PC방에서 살았다. 머릿속으로는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발은 PC방을 향했다. 메이플스토리 최고 레벨이 200인데, 그는 방학 3주 동안 160을 기록했다. 하루에 14시간 동안 게임만 한 적도 있다. 공부는 시험 일주일 전 벼락치기와 학원 수업 듣는 게 전부였다. 전학 후 첫 시험은 전교 30등이었지만, 졸업할 때는 100등으로 졸업했다.
중3 겨울방학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느 날 문득 PC방에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안 좋은 성적 받아와도 혼내지 않는 부모님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엄마에게 “왜 자신을 혼내지 않냐”고 물을 정도로 부모는 한번도 조군을 다그치지 않았다. 조군은 부모님께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서울대 교수인 아버지를 본받아 서울대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스스로 목표를 세운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솔직히 ‘놀만큼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부모님께서 나를 막 혼내고 좋은 성적 받아오기를 강요했으면 더 안 좋게 변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답답한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공부는 억지로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재미를 깨달을 수 있게 기다린 게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책상 위 교재
● 국어: EBS수능특강(EBS), 마르고 닳도록 수능기출문제집(마닳) ● 영어: EBS수능특강(EBS), 어휘끝(쎄듀) ● 수학: EBS수능특강(EBS), 자이스토리(수경출판사) ● 사회(경제, 한국사): EBS수능특강(EBS), 미래로 수능기출문제집(이룸이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