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기도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의 작용으로서 질문을 하려는 사람과 우주의 기운이 자연적으로 일치되어 연결되는 것이다. 참선과 기도를 꾸준히 하면 잠재의식 속의 착각, 망상, 잘못된 업이 녹아내리고, 안 되던 일도 풀리고 건강도 좋아지고 인연도 좋아진다.
오래 쌓인 업은 오랜 기도가 필요하니 하루 아침에 쉽게 공짜로 먹을 생각을 버리고 차분하게 계속 기도하다 보면 삶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잘못된 생각으로, 잘못된 삶의 길로 이끌어온 업이 있으므로, 우주질서의 무한한 지혜로 삶을 밝히고, 참다운 봉사활동로 복덕과 지혜를 구하면 삶이 편안해진다.
기도라는 것은 바라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 또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나 행동양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며, 자신 속에서 신의 마음을 끄집어 내는 과정이다.
마음을 먹는 그것만해도 넓은 의미의 기도라 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행동이 가미됨으로해서 더 강한 에너지의 작용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기도시에 초를 켜야 한다. 향을 피워야 한다. 물을 떠놓고 해야 한다지만 조건이 맞지않는다면 그런 것은 필요없다. 장소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마음이 일심으로 기도하기 어렵다면 사람들이 많이 기도하는 장소에서 해도 좋다. 학생시절때 공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도움될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도 장소를 조용한 곳을 찾는 이유는 기도중에 정신을 모으는데 방해하는 요소가 없는 곳을 찾다보니 기도원, 사찰, 교회, 성당등을 찾는다, 여기에 온 모든 사람의 마음이 기도에 집중되어 있는 사람이니 방해될 일이 없다
그런데 기도의 의미를 잘 몰라서 휼륭한 목사님, 신부님, 스님뵈러 종교단체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데 참고해야된다, 물론 설교가 좋으면 종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니 좋은 점도 있지만 패거리문화가 형성된다는 취약점이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염두에 둘 것은 우리주변의 많은 종교 단체가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봉사를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순수 목적보다 교파나 회원을 모집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거의 전부이니 한심한 일이다,
아무튼 깊은 사고와 명상에 빠질 수 있는 조용한 곳이 좋겠다. 산자락에 터를 잡고 기도를 하시는 분들이나 절 같은 것이 현실의 세계에서 도피하고자하는 심리라기보단 깊은 사고의 세계, 명상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좀 더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러하다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마음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이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기도를 하고자하는 마음이 자발적으로 생기신 분은 갈구하고자하는 것이 아주 강렬하다거나 자연의 마음과 일치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의 시작이며,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는 증거다.
기도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수준높은 한 인간이 될 순 없다. 자신이 갈구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욕망과 함께 깊은 사고와 명상, 참선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럼, 기도의 대상은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에 대한 대상은 자연 그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산신도 될 수 있고,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성인)가 될 수 있겠고, 자신의 조상이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형상이나 조형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불교, 기독교에서 하는 불상, 예수상, 십자가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신은 없다.
인간계와 신계를 연결하는 중간자를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처음에는 쉬울 듯 싶다. 이후엔 그것의 수준을 뛰어 넘어야 한다. 그 다음 대상은 신이 될 수 있겠고, 결국엔 우주의 섭리와 자기 자신이 기도의 대상이 됨을 인식하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도라하면 개인의 구복을 바라는데, 오랫동안 하게되면 좀 더 큰 안목이 필요하다.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한 기도에서 발전하게 되면 다수가 안고 있는 문제, 또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 즉 자신을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수준을 높여줄 수는 없다. 자신의 그릇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 스스로만이 가능하며 그런면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불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소승불교적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의 대승불교보단 인도의 소승불교적인 것이 수준이 더 높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원래에 더 가깝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대승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발전이라기보단 변화가 더 맞겠다. 다분히 정치적인 음모에 의해서 별질 된 면도 있다. 바른 기도법은 자신을 성찰하며 그릇을 키워가는 기도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럼, 기도의 실현과정은 어떻게 되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바가 있다. 대개 이것을 제3의 어떤 존재가 도움을 줘서 나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마음을 갖고 기도를 한다.
신은 인간사에 간섭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죽어간다해도 신은 살리려 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 사람을 수백만명 죽인다 해도 신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종교에서 기도의 대상을 신이라 하니 오류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들은 신이 항상 자신을 돌봐 줄 것이라고 하는 착각에 빠져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임마누엘'이란 것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뜻인데 하나님이 항상 나를 돌봐주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원래는 그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 신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과 동양의 철학적 사고의 차이인데 그 수준이 비교가 된다. 아래에서 말하는 '인간은 소우주'라는 것이다. 신은 인간사에 관여를 하지 않는데 기도하는 대상이 신이라는 것이 오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결국엔 자신에게 기도를 하게되는 것이다.
아무튼 경외할만한 존재인 신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기도에 도움은 된다. 내가 신을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기도에 심취하기가 수월하며 내가 바라는 그 마음의 믿음과 파장은 깊고 커질 수가 있다.
이 파장이 전 우주에 전달되어 자연의 파장과 일치할 때 비로소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일치되기 이전 과정에서부터 서서히 이뤄져가기 시작한다.
신이 아니라 영에 대한 기도도 마찬가지다. 죽은 조상은 신이 아니다. 영이다. 이런 조상은 후손의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으로 후손을 맘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후손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사실은 대개가 힘없고 불쌍한 존재다. 그런 부류는 살아있는 인간의 기운작용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약하며, 그것에 비해 육과 혼을 함께 갖고 있는 나의 존재는 아주 큰 기운을 유도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깊은 파장을 일으켜야 하는데 이때 기도란 것이 매우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 미래의 나는 현재 내가 만든 결과물이 되어 준다. 나 자신은 그것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며 그것은 나의 생각에 의해 실현되어 진다. 나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의 생각에 의해 유도되고 만들어진 산물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끌어 들이고 있는지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어느 사찰에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아주 유명한 스님이 계신다. 이 스님의 말씀으론 100일 기도를 하면 어떤 소원이라도 이뤄진다고 한다. 아주 유명하신 분이신 것으로 알고 있으며 실제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이뤘다고 하며 도력이 높으신 분으로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각자의 소원은 스님이 들어주신 것이 아니다. 신이 들어주신 것이 아니다. 조상이 들어주신 것도 아니다.
기도를 통해 자신 마음속의 아주 강렬한 욕구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자극됨으로해서 각인되어 그 파장이 우주를 진동하여 자연적으로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발현-실현과정이다.
물론, 그 스님을 우습게 보거나 수준 낮은 분이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기도로 자신 스스로 소원을 이루게 된다는 말이다.
대다수가 자신의 기도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어딘가 신통력이 있는 분을 찾아가게 되거나 종교를 믿어 성인분에 대한 신심을 가져 의지하게 된다. 자신이 기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원성취가 이루어 지겠는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의지나 믿음이 부족하다면 이런 신통력이 있다는 분을 믿는 것이 도움은 되지만 역시 기도와 소원성취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그럼 기도하면 된다는데 운명론적인 사주팔자와 상반되지 않는가?
명리학은 매우 정확하다. 사주팔자라하는 것은 여러 행성과 우주 기운의 조합으로, 태어난 때에 어떠한 기운을 많이 갖고 어떤 기운을 부족하게 가졌나 하는 분류를 한 것이다.
내가 태어날 시점에서 자연의 어떤 조합된 기운을 받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내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 명리학이다. 내가 태어날 시점에서 받은 그 기운의 조합과 내가 살아갈 날의 기운들과 다시 조합하여 그 기운이 나에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예정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인데 대자연의 기운인 신은 그렇게 불공평한 게임을 하게끔 하는 어리석음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물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명리학의 적중률이 높은 것일 수 있다. 어떤 유명한 무속인이 타고난 자신의 운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95%라고, 명리학을 확고히 믿는 사람이 그것에 심취할수록 그 틀속에서 빠져 나오기 더 어려워지며, 자연의 기운흐름에 나 자신을 맡겨버리게 된다. 이런 무지함과 어리석음은 없어야 한다.
나 자신의 운명이 그 틀속에 있느냐 아니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냐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
사주팔자 운명론의 작용이라는 것은 자꾸만 그렇게 유도한다는 것이지 그렇게 되어야만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마음이 타고난 사주팔자와 운세의 흐름보다 더 강한 작용을 하면 운명론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나의 자유의지대로 살고자하는 것의 방도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이 기도란 것에는 명상이나 참선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해 반박하는 명리학자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타고난 운명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바라는 바는 있다.
소원이라 할 수도 있고, 꿈(희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 시험에 합격하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
그것을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해도 그것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루고자 하거나 원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마음속에 확실히 각인을 시켜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주 강렬할 때 그것은 나에게 빨려 들어오게 된다. 그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고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들은 이런 방법을 몰라 오히려 더 어려움 속에 빠져들게 된다.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기도를 하지만 오히려 기도하면 할수록 이런 불안함과 걱정이 더 깊이 각인되어 계속 그런 기운을 자꾸만 유도하게 되어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된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어야하며 반복-지속적이어야 한다.
기도의 대상이 절대적이며 경외의 대상일수록 나의 소원이 이뤄진다는 확실함을 갖기 수월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보면 경외의 대상을 기도대상으로 삼으라 말씀드리고 싶다.
그럼으로써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경외의 대상이 나의 기도를 들어줘서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의 사고에 의해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도의 발현-실현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시는 사람이라면 종교는 필요없다. 이미 그 자신은 깊은 신앙심을 가지신 분이시니까. 기도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 좋지 않은 기억 등을 멀리하고자 이것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게 되면 오히려 내가 원하지 않던 것이 자꾸만 내게 더 다가오게 된다. 원하지 않는 것을 밀어낼수록 그것의 파장은 더 강렬해지게 된다.
기도때 '나는 뭐도 안되고.. 뭐도 안되고.. 하는 것마다 안돼~'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으셔도 되고, 이런 말도 남에게 하지 않아야 된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 파장은 점점 거세지고 나에게 다시 그런 에너지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원치않는 것을 생각할수록, 더 말할수록, 나쁘다고 말할수록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되고 그것은 더 큰 파장으로 내게 되돌아온다.
연예인중 자살 등 죽기 직전에 부른 노래말과 자신의 운명이 맞아 떨어진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인의 의지는 강렬했다지만 정작 본인이 그 에너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돈을 끌어들이려고 한다면 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한다. 빚이 있다면 빚을 생각치 말아야 한다. 빚을 생각하면 할 수록 빚은 더 지게 된다. 돈이 없다는 것에 계속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풍요로움에 집중해야 한다.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 병을 생각치 말아야 한다. 간혹 완전히 포기한 채 그것의 구속에서부터 벗어나 홀가분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병이 치유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대는 물질문명의 발달로 과학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어서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선 인정치않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결국엔 이런 가치가 더 인정받게 되어 있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니 나의 미래는 나 자신의 현재 생각과 마음이 만들면 되는것이다. 그러니 바라고 있는 최종 결과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미지화하여 연상해도 좋고, 구체적으로 글로 적어도 좋고, 그림을 그려도 좋다.
내가 원하는 것을 종이에 적는다거나 갖고 싶은 것을 사진으로 두고 보면서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자극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언제 이루어지느냐에 대한 것은 내가 자연과 얼마나 조화를 잘 이뤘는지에 달려 있다.
기도에 임하는 자세는 나는 원하는 것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자석이며 그렇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는 기도는 시간 낭비다. 그 범위는 명확치 않으며 전혀 불가능한 가능성 0%의 공상은 되지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가능다.
나 자신을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나 자신이 그러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파장이 우주를 진동하여 남들도 나를 인정하며 사랑하게끔 되는 기운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안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아주 귀한존재이며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아껴라. 물론 오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분명 이런 자연법을 터특한 사람이 한 말이라 생각한다.
내가 건강하지 않다면 건강한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부족하다면 풍요로운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주변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사랑받는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런 마음을 제대로 가졌다면 기쁘고 행복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며 반복되다보면 각인이 되게 된다. 그러면 우주가 나의 마음에 반응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아주 자연적인 에너지에 의해서 말이다. 이것은 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신 또한 그런 자연법에 적용받고 있는 하나의 존재에 불과하다.
기도때 밝고 긍정적인 감정은 우주에 그대로 파동(=파장)으로 전달되어 나에게 더 좋은 것을 끌어들이도록 유도해 준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그 원천이며 말과 행동, 주문 등은 그것을 더 잘 각인시켜 파장을 증폭시켜주는 수단이다.
그러하니 기도는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만으로도 되는 것이며 말이나 기타 행동은 그것에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생각에 전념하기 어려우니 명상,참선을 통해야 하며 믿음이 부족하니 경외의 대상을 기도의 대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기도를 귀찮은 것이라 여겨선 안되겠지만 하기 싫어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필요하다. 기도를 한 후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잘 한 기도인지 그렇지 않은 기도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것은 속일수가 없다.
기도를 잘 하신 분은 얼굴이 밝고 빛이 나며, 잘 하지 못한 분은 기운이 빠져 있고 어둡다. 기도때 기쁘고 좋은 감정을 느껴야 한다. 물론 가끔은 깊은 사고를 하다보면 밝지않은 경우도 있지만 자주 그러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소우주라고 한다. 이 말엔 엄청난 뜻이 담겨져 있다. 이 말을 누가 최초로 했는지는 몰라도 자연법을 아주 심도있게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의 마음이 나의 삶을 만드는 창조자이다. 나의 현재 생각과 감정-의지는 미래의 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그렇게 유도를 한다.
사고가 긍정적이며 순수한 사람이 잘 늙지 않는 사람이 많다. 내 몸의 세포는 나의 마음에 아주 민감히 즉시 반응하며 나의 마음이 나의 건강과 미래를 결정짓게 해주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가장 어리석고 우매한 사람이 '난 안돼~' 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 어떤 큰 능력을 가진 능력자도 이런 사람은 절대 구제할 수 없다. 이러면 그 기운이 나의 내면 깊숙히 각인되어 뭘해도 안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이것은 자신이 한 것이지 남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의 처지를 남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그 사고에서 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과제이다.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선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중에선 좋은 것 그렇지 못한 것 모두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하신 사람이라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성숙시키고 그릇을 키워준 값진 것이라 좋게 생각해야 된다.
그 중엔 떠올리고 싶지않은 좋지 않은 기억들도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다. 없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인생을 좀 더 살아봐야 하며 '나는 성숙하지 못한 인간입니다.'를 반증해주는 것이다. 아무튼 계속 그것에 집착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가진 것이 된다.
기도의 핵심
"기도하는 법은 형식이 없다."
"기도의 대상은 내가 믿고 경외할 수 있는 존재, 혹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
"신과 조상은 나의 소원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내 스스로의 마음을 자연의 파장과 일치하게끔 하여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기도는 즐겁고 행복하게 해야한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타고난 운명이라는 것은 그것으로 유도된다는 것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마음과 기도로서 자유의지대로 살아 갈 수 있다."
"아주 작은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인생이 개선되지 않으며, 확실히 이뤄진다는 믿음을 갖고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기도도 다 이뤄진다."
여러분도 기도(명상,참선 포함)를 많이 하셔서 풍족하며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종교는 인간 삶에 세상을 대할 때 어떤 으뜸이 되는 가르침이 되는 것을 말하고, 신앙이란 그 가르침을 믿고 우러른다는 인간의 결단, 혹은 신에 대한 응답을 말하며, 인간이 초월적 존재를 대하는 자세다.
즉, 종교란 으뜸이 되는 가르침으로 인간의 근원이 되는 것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에는 크게 이슬람교, 불교, 그리스도교, 회교, 유태교 등이 있다. 그 종교마다 창시자라고 불리는 분들의 가르침과 지킬 계명들이 있다.
좋은 기도란?
운이 좋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기도할 시간이 없다. 그러나 무언가 일이 안되고 힘들때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기도를 하게 된다. 누구든 일반적으로 기도하기 전에 자기 주변에 능력있는 부모나 친지, 친구나 관련된 사람에게 먼저 사정을 말하고 도와 달라고 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기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말을 하고도 도움을 받지 못거나, 말 할 사람들이 없게되면 종교단체를 찾게된다. 그것은 각 종교단체마다 믿는 신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의지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기도라는 것을 하는것을 보면 한마디로 도와주세요가 대부분이다. 집을 사게 해주세요.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말 잘듣고 공부잘하게 해주세요. 무조건 주세요. 주세요. 하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중에 기도 성취가 되었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기도를 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기도하기 전보다 더 어려워지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되는데 그러면 왜 기도를 해도 기도 전 보다 더 어려워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것은 내안에 하나님과 내안에 부처님을 찾아 소원을 빌거나 용서를 구하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된다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비우고, 뉘우치고 자신과의 약속을 하고 나면 좀더 구체적이되거나 과거에는 대충 얼렁뚱땅 닥친일만 수습하거나, 습성대로 원칙을 벋어나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수습하면서 제멋대로 사고를 치고 왔으나 기도후에는 본인과의 약속때문에 상식선에서 원칙을 지키고져하니 똑같은 사건 사고를 만나도 힘들게 되는것이다
결국 누구든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힘든 시간은 보내지만 결국 그시간 만큼은 새로운 운명을 바뀌기 시작하고 오래되어 습성이 좋은 천성으로 바뀌게 되면 운명 전체가 바뀌는 결과가 오게된다
그런데도 조금 어렵다고 무조건 하나님, 부처님 도와주세요. 이것도 도와주고 저것도 도와주세요. 하면 자신의 하나님이 자신의 부처님이 너는 아직 정신 못차렸구나 내가 너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공부의 재료로 주었는데 아직도 달라고만 하니 정신못차렸구나 하고, 너는 더 어려워져라 하면서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기도하는 사람은 결국에 하나님도 부처님도 모두 엉터리라고 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가?
기도는 오직 참회와 회개의 기도, 용서의 기도 후에 어려운 이웃에게 공덕을 쌓는것만이 진실한 기도가 될수가 있다.
기도는 겸손한 바른 마음으로 자신의 모순을 찾아 반성하고 기도한다.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주 겸손해야 된다.
쓸 데 없는 말은 하지 말고, 누구와도 인사말 이외에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던지 답하거나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두터이 하여 이를 맞이하고,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이를 보충하고,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를 다하여 이를 트이게 할 것이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할 수 있으랴!?
스승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스승에 대하여 착각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지혜로운 스승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이 그것이다. 어리석거나 순진한 사람일수록 옳바른 스승이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줄 알고 있다.
옳바른 스승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이는 마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것과 같고 달콤한 설탕이 먹을 때 달콤한 것은 좋은데 마침내 이빨을 썩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세상으로부터 사랑받는 스승들의 공통점은 세상과 타협을 잘 하고, 국가 지도자가 벌거벗었다고 말할 용기가 없으며, 무슨 이익만 되면 양 다리를 걸치고, 불의를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꽃노래만 부른다.
도둑을 보고도 도둑이야! 소리치지 않으며, 상대나 대중에게 아첨을 하고, 자기가 많이 안다고 입만 벌리고 떠버린다. 좋은 게 좋다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한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입과 숟가락만 들고 끼어들기를 좋아하고, 아무나 인연을 맺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척 한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나설 때나 안 나설 때나 잘 나선다. 남에게 보여지기를 좋아하고, 언론을 통해서 홍보에 열을 올린다.
그래서 옳바른 스승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가령 코를 골며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코를 골면서 깊이 자고 있다. 코를 그만 골고 이제 일어나라고 말하면 미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바로 말하는 사람의 존재는 매우 거추장스러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깨어라, 일어나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옳바른 스승은 잠 자고 있는 사람을 보고 깨어라, 일어나라라고 한다. 옳바른 스승은 죽어서 천국에 가자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어서 천국에서 살자고 한다.
옳바른 스승은 그대를 잠에서 깨우고자 하고 그대를 잠 밖으로 끌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그대의 잠은 안락하고 편할지 모른다. 그리고 옳바른 스승은 그대를 가만히 쉬로록 놔누지 않고, 공부하라고 재촉한다. 이처럼 옳바른 스승은 그대가 잠들지 못하게 하고 그대가 해야 할 소중한 일거리를 안겨주고 바른 길을 가르쳐 준다.
그래서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옳바른 스승을 미워한다. 그가 붓다이든, 예수이든, 공자이든, 소크라테스이든, 노자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유사 이래 옳바른 스승은 누구를 막론하고 평범한 사람들, 즉 군중들에게 미움 받아왔다. 그런 반면에 오직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옳바른 스승을 사랑했다.
오래전에 군사 쿠데타가 있었을 때, 이땅의 지식인, 언론인, 학자란 것들은 겁에 질려 감히 코도 훌쩍 못했다. 그런 암혹한 상황에서 옳바른 스승들만이 혼자서 마치 광야에서 혼자 외치는 예언자 처럼 혁명군에게 정면으로 군인은 군대로 돌아가라고 일갈했다.
여러분은 항상 진리를 사랑하는 친구를 찾기 바란다. 그대는 아직 미숙하고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혼자 지도에 없는 바다에 뛰어들 용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라면 뛰어들 용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야 하고 그래서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친교해야 한다. 오늘부터라도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멀리하기 바란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낭비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전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 제라도 옳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빛나는 것이 다 황금이 아니듯 스승이라고 다 같은 스승이 아니다. 옳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옳바른 스승은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스승은 세상에 크게 드러나지 않으며, 어중이 떠중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지 않는다. 이 놈도 좋다 저 놈도 좋다고 하지 않는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며. 실력은 다방면에 뛰어나다.
국가 지도자가 발가벗었다고 말하며, 여기 저기 나서지 않는다. 항상 위엄이 충만하여 말한마디가 위험해서 언론에서도 불편하게 생각한다. 항상 깨어 있고 항상 공부하며,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옳바른 스승을 만나면 스승과 마음껏 취해야 한다. 스승을 갈아 마셔야 한다. 스승은 자신의 내면의 과즙을 그대에게 주기 때문이다. 옳바른 스승의 샘은 마르지 않는다. 그대는 스승과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스승과 함께 있을 때는 우울해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기쁨과 즐거움으로 스승과 연결되어야 한다. 진정한 즐거움은 열정적이지 않고 평화로워야 한다. 진정한 즐거움은 노래를 불러도 그것은 침묵의 노래가 되어야 한다. 진정한 즐거움은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감미롭게 속삭이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거나 깨우치게하는 사람을 선생이라고 부른다.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는사람도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선생보다는 교사라고 하는 편이 옳다. 왜냐하면 선생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거나 터득케 하고 그 방법을 실천으로 옮기시는 분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극한 스승은 공자일 것이다. 공자 만큼 사람되는 법을 하나의 종교처럼 여긴 성인은 없다. 노자는 사람을 도에 맡기자 했고, 여래는 사람을 공에 맞기자 했으며, 예수는 사람을 신에게 맡기자고했다. 그러나 공자는 사람을 사람에게 맡겨야한다고 했다. 이처럼 공자는 사람을 철저하게 믿었다.
그러한 믿음을 인이라했으며 그 인을 실천하면 의가 된다. 남을 사랑하라 이것이 인이다. 남보다 나를 앞세워 사랑하면 불인이고 남보다 나를 이롭게 하면 불의이다.
내가 남을 사랑하면 남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옳바르게 하라 이것이 의(義)다.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음을 공자는 가르치고 터득케 한다.
과연 나는 옳바른 스승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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